나를 책임쳐, 알피(Alfie)_쓰레기같은 바람둥이가 늘어놓는 그럴싸한 변명, 그 허세가 유지되는 결말이 무지하게 마음에 든다 ── 영화

2005/ 1/ 23/ 일 / CGV상암

전형적인 나쁜남자 스타일의 바람둥이 알피
주인공 알피는 전형적인 플레이보이이다. '결혼'이나 '책임'따위를 염두에 두지 않고 자유로운 연애를 즐긴다.
환경도 용이하다. 그의 직업은 리무진 운전사이고 돈 많고 예쁜 여자들을 차에 태울 일이 많으며, 마음에 드는 여자에게 추파를 던지면 백발백중 잘 넘어올 수준의 넘사벽 얼굴을 가지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남자들 사이에서 정말 부러워하나? 이런 남자를?
허우대 멀쩡한데다가 언어구사능력 좋고, 약간은 까칠하고, 돈도 좀 벌고, 별 생각없이 이 여자 저 여자 잘 건드는데 또 건들면 다 잘 넘어오고...

여자들 사이에서는 별로인데, 뺀질거리면 겉으로는 '멋지다'고 치켜세워주면서도 속으로는 싸보인다고 생각하며 행여 엮이게 될까 피해야지 생각하는 그런 부류인데.
그리고 솔직히 남자들을 다그쳐서 그 속내를 들어볼 때면, 남자들 사이에서도 이런 취급을 받는 건 마찬가지인 듯 했다. 겉으로는 부러워 하는 척면서도 뒤돌아서는 역겨워하고 경계하는...내 주위에 있는 남자들만 그러한가?

줄거리는 알피라는 남자의 연애 이력서이다.
그런데 어느날 아무 죄책감없이 살고 있던 그에게 돌발 상황이 발생한다. 절친의 애인과 실수를 저질러 난처해진 것이다.
이 일로서 알피는 자신이 지금껏 사랑이라 생각했던 껍데기만 있고 알맹이는 없었던 수많은 여자들과의 관계를 돌이켜 본다.
하지만 알피가 직접 화자가 되어 나레이션하는 대사들은 그의 반성과 앞으로 변화하겠다는 다짐의 내용이 아니다. 그럴싸한 자기합리화, 어쩔 수 없었다는 식의 변명, 그리고 얼핏 형이상학적인 철학적 발언으로 들리는 뜬구름 잡는 말들뿐이다.
이러한 전형적인 변명이 이 영화의 재미 요소이다.
자신의 외로움조차도 회피하는, 그렇지 않으면 괴로워 어쩔 수 없는 가여운 플레이보이. 하지만 그런 처지도 본인 스스로 만든 것이다. 남들이 괴로움을 감수해 가면서 진정한 사랑을 찾고자 할 때, 제가 하는 것도 사랑이라고 최면을 걸고 쾌락만을 쫓아서 살아 온 결과이니 누구 탓을 할까.
그러다가 남의 사랑에까지 깽판을 치는 지경에 이르고 만다.

게다가 돈많은 연상녀(수잔 서랜든)에게 자기보다 더 젊은 섹스파트너가 짠!하고 나타나자 낙동강 오리알 신세로까지 전락하고.
알피는 연애 리스트 사상 거의 처음으로 자신이 원하지 않는 때에 처참하게 거부당하는 전세역전의 상황까지 맞이한다.
수잔 서랜든이 능력자 연상녀 역할로 등장해서 정말 깜짝 놀랐다. 조신하고 정숙한 미중년 여사로만 기억하고 있던 나에게 큰 임팩트를 주셨다. 다른 한편으로는 주드 로 정도되는 매력남을 쩔쩔 매도록 할 수 있는 포스를 지닌 연상녀로서 수잔 서랜든이 진짜처럼 설득력있게 다가왔을 수도.

현실과의 비교와 대조
나는 이 영화의 결말이 참 마음에 든다.
권선징악의 통쾌함도, 작위적인 해피엔딩의 위선도 아니라서 좋다.

보통의 영화와 드라마는 바람둥이가 철이들고 정신을 차려 조강지처 스타일의 조신한 여자에게 정착하는 걸로 끝나곤 하는데
이 영화의 알피에게는 끝까지 별다른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이 그 동안 여러 여자들을 이용한 것 몇 배 이상으로 보기좋게 당하는 멘탈붕괴의 상황을 겪고서도 애써 담담한 척 한다.
알피가 후회하며 슬퍼하는 꼴을 보고 싶지도 않았는데 그런 면에서 이렇게 열린 결말이 참 좋다. 알피는 웬만하면 지금처럼 계속 그렇게 살거고, 또 그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다고 본다. 크게 불행하다고도 할 수 없고 크게 행복하다고도 할 수 없는 지금 상태의 끝은 내가 생각하고 싶지가 않다.
지금 알피처럼 사는 놈이 있다면, 천지개벽할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이상 별다른 해피엔딩이 없을 건 확실하다.
그런 놈들에겐 참 불편할 영화일 것 같다.

유유상종 만유인력의 법칙
알피 스타일의 남자들이 꼬실 수 있는 여자들의 부류도 모조리 그렇고 그러하다. 즐기고는 싶지만 사랑은 버거워 하는 그런 부류의.
알피도 책임을 지기 싫어하지만, 그 여자들 역시 책임의 대상이 되길 거부하거나 또는 책임지지 않겠다면 굳이 매달리지는 않을.
사실상 알피가 책임을 지고 싶어도 질 수가 없고, 먼저 무언가를 갈망해 올 가능성은 전혀 없는 겁쟁이 여자들인 거다.
결국 알피는 책임을 지네 마네 자신이 주체적으로 뭔가를 결정할 권리조차 없었고, 그 어느 여자도 진정으로 그를 원했던 적은 없는 껍데기 뿐인 연애를 한거다.

이 영화의 제목이 에러다. 제목만 봐서는 꼭 누가 알피에게 매달린 적이 있는 것 같은데 전혀 그렇지 않으니 말이다.
결국 여자들 입장에서도 알피같은 남자는 듬직한, 인생을 맡길만한 남자가 아니라 그저 한 때 스쳐지나갈 인연 정도밖엔 안되는 거였다. 결국 알피-상대 여자들은 간절함의 교점이 낮은 곳에서 형성된 인연일 뿐이지 않았을까. 

내 주위만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현실의 임상에서 관찰한 결과를 보면
정말 신기하게 끼리끼리 만나는 것 같다.
잘 놀던 애가 시집 잘가고, 잘 놀던 애가 순진한 처자를 만나고...뭐 그런 게 아니더란 거다.
그 내막을 들여다보면 잘만났다고 하던 남편도, 순진하다고 생각했던 처자도 알고보면 딱 그에 맞는 사람이더라는 거.
순둥순둥한 사람은 자기같은 사람을 용케 잘 알아보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또 자기같은 사람을 용케도 잘 찾아내고...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는 속담은 정말 맞는 것 같다는게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내 30여년 인생에서 일단락 내린 결론이랄까.

그런 면에서 지금까지 '몇 명 사귀어 봤다',  '몇 명에게서 프로포즈를 받아봤다'고 자랑하는 사람들을 마주치면 난 이제 그냥 거의 '저 사람 쓰레기다'라고 편하게 치부하게 된다. 그리고 사랑이라는 것도 대인관계의 연장선인 탓인지 다른 여러 면모에서도 그 격이 무관치 않더라는 편견이 생겨버렸다. 이를테면 직장생활에서 업무처리하는 방식도 그렇고,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도, 교우관계도...사랑하는 모습과 무관치 않더라.
그래서 옛 어른들이 '가화만사성'이라고 했는지도 모르겠다. 흠...어쩌다 보니 사랑의 목적과 종착지가 가정을 이루는 것이라는 걸로 귀결이 되었는데, 사실 가정을 이룰 생각을 배제한 채 사랑 찾아 헤맨답시고 이 사람 저람 정처없이 거쳐가는 건 분명 자랑할만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한 이성만을 봐야한다는 것이든, 자식을 낳아 양육해야 한다는 것이든, 무언가 재미없어 보이고 힘들어보이고 책임져야 하는 어려운 상황은 회피한 채 달콤함만을 즐기려 하는 게 무슨 사랑이라고.

그런 면에서 알피(상대방인 여자들도 마찬가지)가 가지고 있는 혼외정사, 동거 등의 방탕한 연애이력은 비겁한 거다. 진짜 사랑에 빠져버릴까 두려워 정면돌파를 피한 비겁함이었고 온전히 사랑해 본 적이 없다. 그리고 그 상대방들에게도 온전한 사랑을 받지 못했다. 
이런 식으로 비겁하게 몇 번의 실패를 자처한 건 몇 번의 이혼보다 훨씬 악질적인 거라고 생각한다. 

고로 그게 여자이건 남자이건 바람둥이들이 운운하는 '사랑'이라는 건 진짜 나부랭이 쓰레기 개똥철학이다.
바람둥이들이 하는 건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는 '작업'일 뿐이지, 고귀한 '사랑'이 절대 아님.
알피가 계속 '그들만의 리그' 속에 머무르길 진심으로 바란다. 

+
바람둥이는 제비나 꽃뱀과는 다르다.
제비나 꽃뱀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에 반대되는 나만의 생각인지 몰라도.
잘난 바람둥이는 있을지 몰라도 제비나 꽃뱀은 거의 못봤다. 오히려 추남추녀가 많았지. 
진짜로 좀 많은 사람들이 욕심낼 거 같은, 호감을 주는 사람들 중에서 제 스스로 남의 꽁무니를 졸졸 쫓아다니는 행동을 하는 경우를 본 적이 없다. 오히려 곁에서 좀 찔러보고 매달리는 사람들을 쳐내기에 바쁘지.

드라마나 영화에서 바람둥이나 제비나 꽃뱀이 미인으로 많이 등장하는데 소위 미인들은 도리어 허당인 경우가 많다.
사람은 자신에게 넘치는 것, 쉽게 손에 넣을 수 있는 것에는 오히려 집착하지 않는 현상이 아닐까 생각했었다. 또 그게 사람이 아니라 돈이어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돈 벌 능력 없어보이는 사람이 '돈돈돈돈돈' 거리며 산다. 그러다가 사람도 잃고 건강도 잃고 그러지.
반면에 실제로 돈을 벌어들이고 잘 유지하는 사람은 절대 돈을 먼저 쫓고 잘 가두고 해서 버는 것은 아니더라. 

내가 발견한 사람 사이의 만유인력의 법칙에 따르면 바람둥이는 그 어떤 것으로도 채울 수 없는 외로움을 타고난 사람들인 듯 싶다.
제비나 꽃뱀은 추잡하게 남의 등 치는거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는 사람들인 것 같고...
구두쇠는 그렇게 돈을 쫓지 않으면 도저히 살아갈 수가 없는 상태의 사람들이고.
아무튼 결핍된 사람들.





덧글

  • deepthroat 2013/08/13 09:27 # 답글

    주드로.. 저때는 남의 여자 뺏는 역활이었는데 이젠 여자 뺏기는 역활로...ㅠ.ㅜ

    알피 자체는 마이클 케인이 알피로 나오는 원작의 평이 더 좋다고 하더군요. 그래도 이때 주드로는 정말 잘생김;ㅁ;!!

    그 수잔 서랜든 부분의 '와쓰히곳베터단미!!' 부분은 참 애잔한 기분도 들더군용... 생각 난김에 다시 봐야 할듯.ㅎㅎ
  • 착한마녀 2013/08/15 22:09 #

    앗...이 영화가 원작이 따로 있었군요. 어쩐지 주드로 감상하면서 가볍게 볼려고 했는데 왠지 심오한 ^^;
    주드로 요즘 정말 안습이에요. 그냥 뿔쌍한 홀아비같아요 ㅠㅠ 언제부터인가 로다쥬 들러리 역으로 나오고, 이혼 안했더라면 좀 나았을까요
  • deepthroat 2013/08/16 09:14 #

    요번 키라 나이틀리랑 나온 안나 키레니나가 압권이죠.ㅎㅎㅎ
    근데 뭐 구미 배우들은 그런 식으로 '늙음'을 받아들이는 듯한 입장이기도 한거 같기도 하고...
    뭐 개인차는 있겠지만...

    결정적으로 탈모가;;; 제일 크지 않을까 싶네요;ㅅ;
  • 착한마녀 2013/08/24 20:39 #

    아...키이라 나이틀리 캐러비안의 해적에나 나와주지 ㅋㅋ 주드로는 뭔가 변신을 해야 다시 호감을 찾을 수 있을 듯해요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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