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펜하우어의 토론의 법칙, 원앤원 북스_스스로 생각하기 보다 잘나보이는 사람의 말을 비판없이 받아들이려 하는 사람들을 잘 속이는 비법 ── 책


쇼펜하우어의 토론의 법칙/최성욱/원앤원북스/2003

토론이란 칼 대신 머리로 하는 검술이라고 했다. 그래서 토론의 기술은 '진리'와는 무관하다. 칼 싸움을 하면서 어느 검객이 옳은 이인가를 감안하고 보기란 쉽지 않듯이. 현란한 칼놀림에 시선을 뺏기다 보면 저 둘이 왜 싸우는지, 어느 쪽이 착한 놈인지 나쁜 놈인지는 관심 밖의 문제다.

이 책은 진심어린 지침서라기 보다는 아주아주 하이한 개그, 고단수 유머집이라고 생각하면 될 듯 싶다.

이 책의 막바지는 "내가 알려준 모든 방법을 썼음에도 토론에서 질 위기에 처한다면 이렇게 탈출하라"는 위기 탈출의 기술인데,
몇 가지 예를 들면 질 것 같으면 진지하게 딴소리를 시작한다, 반론거리가 없으면 무식해서 무슨 소린지 못알아 듣겠다고 한다, 이론상으로는 맞는 얘기지만 실제로는 틀리다고 억지를 쓴다, 최후의 수단으로 인신공격을 한다 등이다. ㅋㅋㅋㅋㅋㅋㅋ

이걸 읽고 실제로 써먹고 싶어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 사람은 분명 음흉한 찌질이다.
쇼펜하우어가 알려준 대로 싸워서 이겨야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아야 진정한 지식인이다.
사심없는 순수한 이성으로 토론에 임한다면 모든 것의 의견 일치가 가능하다. 의견일치가 아니라면 적어도 서로의 견해를 이해할 수는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러지 못하는 것은 외적 요인이 개입하기 때문이다. 진리가 아닌 것을 주장해야만 이득을 얻을 수 있는 사람들이 있어서랄까.

토론에서 이기는 기술을 논하는 학문은 있을 수 없다. 거짓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한 술수가 바로 '궤변술'이라는 것이니.
안타깝게도 진짜 진리를 말하는 사람보다 궤변에 능한 사람들에게 세상은 혹한다. 어떤 말의 진리 여부보다는 누구의 입에서 나온 말인지가 중요한 세상?

그래서 나처럼 무식한 사람들도 이 책을 한번쯤은 꼭 읽어봤으면 싶은 게, 얼핏 화려한 언변을 구사하는 잘나보이는 사람들을 직접 가려보는 습관을 들였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이 책은 논쟁에서 무조건 이기고 보려는 인간의 추악한 심리를 들추어 낸다. '진리'가 무엇인지를 모르고 논쟁을 시작했을 때, 말을 하다보니 중간에 '내 생각이 좀 잘 못된 거였군'이라고 눈치를 채더라도 끝까지 비루한 자격지심(자존심이 아님)을 지키기 위해 쓸 수 있는 갖은 술수들이 나열되어 있다.

예컨데 지난 대선 토론에서 이정희라는 논객은 '쇼펜하우어의 토론의 법칙'을 잘 숙지하고 악용하는 사람의 좋은 예로 보였다. 상대를 어이없게 만듦으로서 토론 분위기를 주도하고 기선을 제압하는...그러나 자세히 들여다 보면 억지, 잘못된 근거, 토론 상대방과의 소통 단절과 같은 문제점이 보였다. 난 쇼펜하우어의 토론의 법칙을 읽은 독자이므로!
그러나 뭔가 잘못된 거여~ 까진 생각할 수 있되, 반박을 해보라면 어쩔 줄을 모를 것 같다. 나의 내공은 거기까지다.
이 책에서 배운 관점으로 몇 가지를 분석해 보면 이정희 전 후보는 상대의 대답을 근거로 자기 주장의 진실성을 확보하는 데 능했다. 문답식 토론에서 유용한 기술(?)인데 많은 질문을 자세히 한 후 상대방이 일부 사안에 대하여 시인하면 그걸 토대로 논증을 재빠르게 전개하는 식.
상대의 화를 돋구고 말싸움을 걸어 무리한 주장을 관철시키려는 시도도 했다. 그러나 이 부분은 박근혜 현 당선자의 방어능력도 뛰어났다. "만약 친인척 비리가 발생하면 대통령 그만 두라"는 말에 대해 박근혜 당선인은 차분하게 선을 분명히 긋는 식으로 대응했다. "걸핏하면 못해먹겠다. 관둔다 말하는 것은 지도자로서의 책임감이 결여된 행동이라 생각한다"고.
전문지식이 부족한 청중을 이용하기도 했다. 방송이 끝나고 나서 틀린 통계자료, 틀리게 둘러댄 답변 등이 드러난 바 있다.

쇼펜하우어는 토론 상대를 화나고 흥분하게 하는 것을 중요한 기술로 들었다. 논쟁에서 화를 다스리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화를 잘 참고 차분하게 말을 이어갈 수 있는 사람이 토론을 잘하는 거다.(이건 비꼼의 기술이 아니라 진정한 기술)

생각할 능력을 가진 사람은 소수이지만, 사람들은 견해를 가지기를 원한다. 자기 견해를 스스로 만드는 대신 타인의 견해를 받아들인다.
이 책은 얇은 두께지만 말을 할 줄 알고 남 얘기를 들을 줄 알며, 글을 쓰고 읽을 줄 아는 사람이라면 생각할 거리를 무궁무진하게 찾아낼 수 있는 화수분과도 같다.

직접 반박, 간접 반박, 간접 논증, 단순 반증, 귀납, 연역 등의 어려운 논리학 단어들이 가득하지만 큰 틀에서 찬찬히 읽어보고 나름 큰 의미를 정리하는 것이 좋겠다. 난 이 책을 읽은 후에 소위 말잘하는 사람들에 대해 경계심이 생겼던 것 같다. 언변이 뛰어나면 일단 경계, 화려한 미사어구를 솎아내려 하고, 말하고자 하는 바가 뭔지 통찰해 내려는 노력을 나도 모르게 하게 됐다. 정확한 방법을 몰라도 일단 그런 의심을 품을 줄 알게 되었다는 건 나 스스로도 기특하다. 좀 배운 사람이라고 해서, 권위있는 사람의 뇌를 거쳐 나온 말이라고 해서 그걸 그대로 받아들이는 건 일종의 무임승차이다. 나의 뇌에 대한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부족하지만 나름의 비판 프로세스를 거치려 노력한다.

갈릴레이가 살던 시절, 태양 주위를 지구가 돌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갈릴레이 한사람뿐이었을까?
갈릴레이도 토론의 자리에 섰으며 졌다. 이처럼 아무리 타당한 견해라고 할지라도 그 자신에게 막대한 손해를 끼칠 경우, 여기에 더해 아무도 내 편을 들어주는 사람이 없다면 토론에서 이기긴 힘들다.
요즘 드라마 '아이리스'를 보고 있는데 요 조직의 암살 대상 목록에 올라 있다면 어떤 토론도 제대로 하긴 힘들거다.

정말 뛰어난 논객이 되려면, 그냥 본인 스스로 흠잡을 데 없이 제대로 잘 사는 게 젤 편할 것 같다.
자살 옹호론자에게 "당신은 왜 자살 안합니까?"하고 하면 올킬이 되듯이 언행일치의 삶을 살며, 자신 없는 말은 하지 않는 게 궁극의 기술인 듯. 

"나도 그렇게 말하고 너도 그렇게 말하고 마지막 남은 사람도 그렇게 말한다. 사람들이 이처럼 자주 그렇게 말했으니 지금 우리가 볼 수 있도록 남은 것은 구전되어 내려온 것 뿐이구나" - Bayle

"보통 사람들은 아무 말이나 들어도 그 속에 뭔가 생각할 게 있다고 믿지요"- 괴테의 '파우스트' 중



덧글

댓글 입력 영역

구글 애드센스 2


애드센스


통계 위젯 (블랙)

123
87
5354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