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늘] 하필 한여름이 제철이라 손질하기 까다로운 것 ── 살림 철학



마늘 간장 초절임. 올해 담은 것과 3-4년 된 것. 오래될수록 검어지고 맛도 좋아진다.

마늘이 싸서 사재기하기 딱 좋은 해였다.
우리집은 매년 스무 접 가량의 마늘을 소비하며 갈아서 냉동보관하는데 올해는 총 집계해 보니 30접 정도 산 것 같다.
간장 + 식초에 절이기, 꿀에 재기로 장기 보관하는데 마늘 제철에서 얼마간은 통마늘을 올리브유에 볶아 먹는 기간이기도 하고,
2,3년전부터인가 꿀에 잰 마늘을 부모님이 약 삼아서 몇 알씩 드시는데 마늘 매운 맛과 단 맛의 조화는 개인적으로는 못먹을 맛이다.
간장 초 절임은 3~5년 정도 묵으면 고기 반찬으로 딱 좋다. 아니 마늘 반찬으로 고기가 괜찮다.
나머지 마늘을 갈아서 냉동보관. 내 엄마도 아침 방송에서 보셨다며 책받침 형태로 갈은 마늘을 얼렸던 적이 있는데 그건 오히려 불편하다고 한다. 냉장고 정리를 하다가 작년에 보관해둔 갈은 마늘도 몇 덩어리 발견했는데 그걸 보니 냉동고가 멈추면 그게 바로 테러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는 사람이 더한 재료 구입, 일손도 부익부 빈익빈

사실 10년 동안 친인척으로부터 말만 충청도 6쪽마늘이지 껍질 벗기기도 힘든(마늘의 고장에서 마늘 농사 하는 집에서 시중에 못파는 마늘 땡처리, 혈연으로 얽혔다고 비싸도 웬만하면 구매. 아는 사람이 더 무섭다)자잘한 하급품을 비싸게 강매 당해왔는데, 올해는 독립선언!  먼 친척보다 나은 동네 이웃 한집이 세어보지도 않고 후하게 담아주신 마늘을 모조리 사왔다. 거의 2주일동안 아빠, 엄마, 나 이렇게 틈틈이 밤낮으로 손질하여 메드포갈릭 부럽지 않은 인프라를 구축했다. 살껍질이 벗겨지도록 마늘 벗기기 노동,

먹거리 기초 손질은 보통 힘든 일이 아니라서 일년 치 식량을 구축하려면 일반 가정에서도 일손이 필요하다. 동네 사람들끼리 사이가 좋으면 두레나 품앗이를 하기도 하지만 뭐.
작년에는 도우미를 따로 구해서 했는데  올해는 가족끼리 자급자족했다
예전 살던 동네는 지금보다는 인심 좋은 나름 부자동네라고 불리우는 동네였다. 야채가게 앞 평상에 가면 늘 뵐 수 있던 할머니들이 우리집에 마늘 왔다는 소식을 들으시면 "늙은이들 시간이 무료하니 그냥도 해주지뭐." 하시곤 마늘 한알 안가져 가시고 사례도 안받으시고 그래서 나중에 평상에 짜장면 탕수육이나 한 턱 내면 되었다. 본인들도 자식을 거느리며 사시니 젊은 사람들 한 푼이라도 아끼라며.
but 서울시 빈촌으로 꼽히는 여기 할머니들은 그런 인정스러움이 없을 뿐더러 노동에 대한 의욕도 없고 뭐랄까 좀 드센 느낌. 그러면서도 앓는 소리는 많이 하시는 편. 술은 젊은이 못지 않게 드시는 동네 슈퍼마켓의 우수 고객이시면서도 여기저기 아프시다고. 
그래서 뭐 얘기도 꺼내지 않았지만 여기 동네 할머니들께서  평소 얼마나 동네 소문들을 제조해내셨던가로 비추어 예상해보면 마늘 껍질 벗겨달라고 얘기라도 꺼냈다가는 사례를 하면 많이 했다 적게 했다 말많고 술값이 더 많이 나가거나, 마늘 몇 접을 그 댁들로 옮겨다 드려야 할 거고, 더 나아가 우리 집이 지저분하다는 둥 뭘 어떻게 해놓고 산다는 둥 내가 무슨 옷을 입고 드나든다는 둥 12시까지 늦잠을 잔다는 둥 얘기가 많을 것 같다. 생각만 해도 ㄷㄷㄷ

두 지역의 어르신들을 확실히 차이가 난다. 지하철만 타도 알 수 있다. 예전에는 동네에서 나오거나 동네 가까이로 들어갈 때 학생일 때는 학생이 피곤하지~, 직장인일 때는 젊은이가 돈버느라 피곤하지~ 이러시며 앉아서 공부도 하고 편하게 가라며 자리도 마다하시는 어르신들이 많았다면, 지금 이 동네에서는 앉을 생각을 아예 안한다 -_- . 차라리 젊은이 내가 힘드니 자리좀 비켜달라고 대놓고 말씀을 하시면 양반이다, 지팡이를 탁탁 치거나 요새 젊은 애들 문제라고 저저 일부러 자는 척 눈감고 있는 것 보라며 웅변하시는 통에 봉변 당하는 젊은이들을 한 두 번 본 것이 아니라...나는 어떻게 늙어야 하나 고민이다.

어쨌든 이사온 이후 작년까지는 중년의 아주머니 도우미를 구했었는데 이 도우미 아주머니들 역시나. 엄마 말에 의하면 지금까지 이불빨래하는 날 등 큰 일 때문에 만나 본 도우미 아주머니들과는 다르게 예상보다 훨씬 많은 날을 방문하여 단지 마늘 껍질만 벗기는 대접하기 어려운 손님이었다고. 마늘 껍질 벗기는 것만 의뢰했으니 마늘 껍질만 벗기는 건 그렇다 치지만 껍질 쓰레기 뒷처리니 먼지 청소니 행주나 걸레 빨기 그런 건 온통 엄마 몫이고 점심도 시킨 음식은 싫다며 가정식으로 달라하시던? 그래서 엄마 혼자 계심 대충 먹는 점심도 나름 손님 상차림 하느라고 매년 며칠동안 힘들었다는 얘길 들었다.


그런데 올해 마늘 시즌에는 마침 내가 백수여서 효도를 좀 했다?
나 역시 그 도우미 아주머니 못지않게 느릿느릿 마늘 껍질을 벗겼는데 손이 소중하다고 장갑을 두 개나 끼우니. 늦게 퇴근후에, 주말에 집에 계실 때만 동원되는 아빠보다도 생산량이 떨어지는...
노동의 보상이란 것은 다이어트 압박 없이 먹고싶은 만큼 먹고 tv를 보고 싶은대로 봐도 되는 잔소리 회피권! 따지고 보면 노동력이 5일 풀로 친다면 마늘 전체 구입 비용을 능가한다. 그만틈 노동력의 가치가 크다.
어쨌건 나도 별다는 불만은 없는 게 춤추는 가얏고 이후로 제대로 본 드라마가 없기에 극강의 혜택인 셈인지라.
무노동 무임금 원칙인 우리 집에서 tv를 보려면 멸치 다듬기 키트, 다시마 가위질 키트 등 종류도 많은 갖가지 일거리가 꼭 나오고 그게 아니면 스트레칭이라도 해야 안혼나서 그냥 안보는 편이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손이 부르트고 허리가 뽀개지도록 뻐근해도 마늘 노동 기간이 끝나니 서운하기도 했다.

마늘먹고 사람 처럼 살기가 쉽지 않다. 가정집의 먹거리 장만도 이런데 식당이나(특히 한식) 그런 곳은 오죽할까 생각된다. 껍질이 녹는 화학약품이라도 있는 게 아니라면 말이다.




덧글

  • 뷰티풀 2012/09/15 15:08 # 삭제 답글

    글맛이 좋으십니다~단어나 말투에 따라 가리는게 많은 편인데 술술 잘 읽히네요!
    저도 여유있게 늙고 싶습니다
  • julep 2012/09/18 15:25 #

    우왓 ㅋㅋ 기분좋은 과찬이세요. 말하듯이 편하게 따옴표도 다 빼먹고 썼는데 앞으로 좀 더 읽으시기 편하도록 신경써야겠어요.
    저도 잘 늙고 싶어요. 그러면 젊어서 고생을 사서 해야할 것 같아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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