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에 대한 시시한 사색 □ 시시한 사색

- 유년시절에는 서울역에 대한 별다른 기억이 없다. 서울수도권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면서 또 지방으로 다닐 일도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지방 친인척 댁에 방문해야 할 때면 서울역이 아닌 영등포역, 청량리역 등 다른 역을 이용하거나 고속버스를 택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부모님이 동생 때문에 서울역 근처 소화아동병원이라는 영유아 전문 병원을 참새가 방앗간 드나들듯 하던 시절, 나도 몇 번 따라 다녔다는데 그건 내 기억이 아닐 뿐이고. 

- 지금 사는 곳으로 이사를 온 후 얼마 간 살다 보니 서울역을 경유하는 경의선이 개통됐다. 곧이어 서울역 방향의 공항철도도 개통이 되었다. 그런 걸 신경쓰고 이사를 온 것은 아니었는데 얼떨결에 내 위치와 서울역과의 시간 거리는 지하철로만 10분 내외라는 놀라운 스펙(?)을 지니게 됐다. 물론 김포공항, 인천공항 등 다른 경유역들과의 마음의 거리도 그만큼 좁혀졌지만.

- 기대치 않았던, 하늘이 내려준 것만 같은 교통 여건은 나로 하여금 서울역 일대의 직장에 입사지원을 고려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고 실제 입사에 성공했다. 얼마 안 있어 강남 본사로 발령을 받는 바람에 여러모로 여유롭고 천국같던 회사는 출퇴근 지옥을 동반하는 밥벌이터가 되고 말았지만.

- 서울역은 어떤 의미에서는 정말 재미있는 곳이다. 깔끔한 서울스퀘어를 비롯해 STX 사옥, 연세빌딩 등 강남역, 시청역, 을지로역 일대 못지않을만큼 나름 오피스맨 부심을 느낄 수 있는 환경적 조건을 지니고 있다. 전국으로 사통팔달인 KTX 역사가 상징하는 무게감도 더해진다.  
 
서울역과 '노숙인'과 '시위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단어들인 걸까
- 하지만 약간만 이면으로 넘어가면 전혀 다른 광경이 펼쳐진다. 점심시간에 근처 식당가를 배회해 본 인근 직장인이라면 노숙인들에게 무료 식사를 제공하는 쉼터 앞에 대기자들이 줄을 길게 늘어선 모습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아니, 이면으로 넘어갈 것도 없이 서울역사와 그곳과 연결되는 1호선 4호선 통로와 출구 인근만 해도 가관이다. 
서울역은 대중교통 사정이 워낙 좋기도 하거니와 주차장을 돈주고도 얻지못할 평사원인 까닭에 늘 서울역사를 거쳐 출퇴근을 했는데 지하철 연결통로로만 이동해서 사옥으로 진입할 경우에도, 지상의 서울역 광장을 통해서 로비로 진입하는 경우에도 노숙자와 마주치지 않을 수는 없었다. 그들은 9시 가까운 출근시간이면 아직도 자고 있거나, 아니면 깨어나서 먹잇감을 찾는 하이애나처럼 어슬렁거려서 위협감을 느끼게 하기도 했다. 어떤 날은 무언가 알아듣지 못할 말을 중얼거리며 다가와 경보선수 모드로 지나친 적도 있었다.
나는 늘 되도록 당당하게 걷고 센 척해 보이려고 애썼다. 긴급상황이라도 발생하면 신속하게 줄행랑을 칠 수 있도록 운동화나 단화를 신었고 하이힐 같은 불편한 걸 신는 날은 단 하루도 없었다. 또한 뾰족한 무언가를 들고 다녔다. 예를 들면 옷핀이나 만년필 같은 것.

- 그러고 보니 2008년 약사회에서 일할 때, 산하 부서였던 마약퇴치운동본부를 따라 중고등학생으로 구성된 봉사단의 캠페인에 동행한 적이 있다. 봉사단은 모집이 힘들었던 관계로 주로 약사들의 자제들도 구성이 되었다. 똑똑한 아이들이라 그런지 야무지더라. 갑자기 이런 쓸모없을 것 같은 아이들에 대한 품평까지 하는 이유는 그 날 여러 모로 못볼 꼴들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노숙인들의 행패랄까.
볼펜과 휴대용 티슈를 나눠주던 불과 한 시간여 동안 일촉즉발의 위기감을 수도 없이 느꼈다. 한쪽 구석에서 술판을 벌이고 있는 노숙인 무리도 있었고, 각자 고독을 씹던 노숙인들까지 어린 학생들에게 몰려들었다. 
캠페인에 참여한답시고 볼펜을 얻어가는 것까지는 좋았다.
여러 번 반복해서 다가와 볼펜과 휴대용 티슈를 얻어가는 것까지도 좋았다.
나중에는 아이들이 들고 있던 홍보패널과 브로슈어 뭉치, 그리고 볼펜상자와 휴대용티슈 뭉치를 통째로 노리고 빼앗아 가려고 실랑이를 벌이는 것 아닌가. 
앞서 '똑똑한 아이들이라 야무지더라'는 감탄은 이 때문에 나왔다. 어른인 나조차 경직되고 얼어 있는데 대부분이 여학생이었던 그 어린 중고등학생들이 쫄은 기색도 없이 또박또박 "이러시면 안되요. 이건 한 사람 앞에 하나씩 공평하게 나눠주어야 해요!"라며 노숙인들에게 예의를 잃지 않은 채로 당당하게 의견을 표하는 거였다. 물론 그 아이들의 항의를 들은 노숙인들의 반응은 소설이나 드라마에서나 볼 법한 감동하는 기색과는 정반대, "오오~ 그러셔?" 하는 썩은 미소와 비아냥이었지만 말이다.

이날 사건이 여기서만 그쳤더라면 또 기억에서 없어졌을지도 모른다. 한쪽 섹션에서 술판을 벌이던 노숙인 무리에서 유혈사태가 벌어졌다. 자세한 정황은 목격하지 못했기에 깨진 병부림인지 칼부림인지 모르겠다. 내가 본 시점부터 진술하면 아마도 지역 공무원이나 서울역사 관계자로 보이는 멀끔한 남자가 흰 와이셔츠를 온통 빨간 피로 물들인 채로 소란스러운 노숙인 무리에게서 벗어나 어딘가를 향해 지나쳐 갔고, 이윽고 경찰들이 몇 명 와서 노숙인 몇 명을 데려갔다. 
그날의 봉사활동은 계획했던 시간보다 훨씬 단축된 채로 마무리된 것은 물론이다.

- 아무튼 그렇게 잠깐 머물렀던 시간 중에도 노숙인들의 쇼킹한 에피소드(?)를 겪고 보고 했던 나인데, 지속적으로 출퇴근하는 동안은 막상 담담했고 또 다행히 별 사건도 일어나지 않았다.
내가 다니던 회사는 우편물은 각자가 발송하는 시스템이었던지라 우체국에 직접 가야했다. 인수인계 기간에 전임자는 내게 아주 중요하니 잘 알아두라며 서울역 인근 우체국을 알려주고 그 곳에서 볼일을 보되 경로가 유독 위험하니 한적한 시간이 아닌 유동인구가 많은 점심시간이나 퇴근 직전 시간대를 공략하라는 정보를 주었다. 
하지만 무언가를 하기 전에 있는 힘껏 요행을 물색해보는 나의 게으름은 그 길을 두 번 다시 걷지 않아도 될 방법을 찾아냈다. STX 사옥에 설치된 무인우편함을 발견한 것이다. 매일 특정 시간대에 수거하는 그 무인함은 법인카드도 긁을 수 있고 편지봉투, 대봉투는 물론 간단한 소포까지 부칠 수 있었다. 소포 무게가 꾀 나갈 때는 지하 편의점 택배를 이용하면 그만이었다. 성실했던 나의 전임자는 업무상 발송요청이 많이 들어오는 무거운 책 덩어리도 애써 우체국까지 가져가서 부쳤던 모양인데.

- 지금 떠오르는 노숙인이 딱 한 명 있다. 그는 30대 중후반으로 보이며 카키색 야상을 입은 채 발견되곤 하던, 행색이 나름 준수한 노숙인이었다. 서울역사에서 내려오는 긴 에스컬레이터 쪽에서 자주 목격되던 분인데 그를 기억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카메라가방 같은 것에 애완견을 넣어서 애지중지 데리고 다녔기 때문이다. 개의 상태도 나쁘지 않았다. 그분은 늘 그런 채로 내 눈에 띠었다. 홈리스 노숙인이 강아지에게 편안한 안식처를 베풀어 주다니! 나는 그 분에게서 일종의 '낭만' 비슷한 걸 느꼈다.

- 이밖에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서 특별한 노숙인 목격담을 종종 들을 수 있었다. 우리 팀장님은 어느 날 점심을 먹으러 나가셨을 때 어느 골목에선가부터 119 대원들의 들것에 실려 나오던 노숙자 시신(무려 시신-_-;)을 목격했다고 했다.
업무차 은행에 자주 방문하던 동료는 인근 은행 자동화기기 창구에서 돈을 찾는 노숙인을 일상적으로 많이 보았다고 했다. 통장이나 현금카드로 지폐들을 찾아서 유유히 나가는 모습을 처음에는 신기해 하더니 나중에는 더 이상 화제로 삼지도 않았다. 노숙인들이 기초수급비 같은 생계 지원금을 얼마나 받는지는 모르겠지만 월급쟁이들도 돈이 없을 때는 끊는 술과 담배를 무슨 돈으로 누릴까 궁금하긴 했었다.

- 서울역에 대한 사색이 노숙자 이야기로 점철된 듯 하다. 하지만 한 가지 더 있다.
바로 내 일생 최초로 수많은 시위대를 구경할 수 있던 곳이라는 것. 그 전까지 나는 말로만 듣거나, 보았더라도 시위가 끝난 후 최루탄 냄새가 남아있던 평소와 다름없는 거리를 지나본 경험밖에 없었다.
그런데 서울역에서는 시위를 무척이나 자주 보았다. 회사 휴게실은 서울역 광장을 바라보는 입지도 그렇거니와 유리 전창으로 된 공간이라 시위를 관람(?)하기에 더할나위없이 좋았다. 대부분의 시위는 뉴스에조차 언급되지 않았지만 어쩌다가 뉴스에서 다뤄주는 큰 시위가 있을 때는 가장 높으신 분에서부터 말단직원까지 휴게실 창가에 모여 그 행렬을 내려다 보곤 했다. 
확성기로 웅얼웅얼하는 소리는 20층 가까운 사무실에서까지 들을 수 있었다. 처음에는 무슨 말을 하는지 귀 기울여 듣기도 했는데 관람회차가 반복될수록 그럴 필요조차 느끼지 못했다. 그 어떤 종류의 시위이건 시위대의 깃발도 '민주노총', '금속노조' 등으로 비슷했고 나오는 말들도 '미국', '미군', '정부', '대통령 탄핵' 등으로 대동소이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목격한 범위 내에서 시위대는 보통 질서를 잘 지키지 않았다. 전경을 놀리듯 '갑툭튀' 해서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사람도 있고, 시위의 끝은 항상 차도를 침범해서 교통정체를 유발하는 것이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역은 한동안 나에게 좋은 일터였던 회사가 있던 곳이고, 어린 시절 나의 롤모델이었던 건축가 김수근 선생의 기운을 실컷 받을 수 있었던 곳이다.
아무도 없는 시간을 틈타 휴게공간에서 이 거리를 내려다 보는 건 나만의 소소한 힐링노하우였다. 저 멀리 산도 보이고 세상이 역동적으로 돌아가고 있으며 나도 함께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었던 시간. 
평소에 이 거리는 이렇게 썰렁하지 않다. 어느 연휴 때 특별근무를 하면서 새벽도 아닌데 이렇게 한산한 거리는 흔치 않다는 생각에 남겨두었던 사진이다. 

덧글

  • 지나가던 2016/08/07 13:33 # 삭제 답글

    인간본성과 한국사회구조에 대해 통찰을 제공해주는 곳이기도 하죠. 저는 국회의원 당선자들은 의무적으로 서울역노숙1주일 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분기별로 1주일씩.
  • 착한마녀 2016/08/08 00:37 #

    제가 그런 통찰의 기회를 얻은(?) 것이었군요. 노숙인들은 차라리 아무 걱정도 없는 것 같아서;;; 평범한 행인이라던가 일선 현장 관리 공무원 체험이라도 시켜보면 좀 나을 것 같긴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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