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Fluid Boundaries)-뭐 하나는 맘에 안들고, 뭐 하나는 맘에드는 세 감독의 릴레이 영상편지 ── 영화


2016.6.29.서울극장 인디스페이스 


한국의 문정현 감독, 인도네시아의 다니엘 루디 하리얀토 감독, 세르비아의 블라디미르 토도로비치 감독이 서로에게 쓴 영상편지 모음집이다. 

"국경이 없는 나라가 이 세상에 있다면 세상은 훨씬 재미있는 곳이 될꺼야"
사실 포스터의 문구만 보고도 이 영화의 메시지가 내 맘에 들지 않겠구나 싶긴 했고, 결과적으로 그렇다. 

내가 좋아하는 무경계의 개념은 생각, 경험, 경력, 학문, 기능의 경계를 넘나드는 '멀티플레이', '크로스오버', '퓨전' 같은 것이지 국경의 경계가 없는 상태같은 건 아니다.

좀 더 극단적으로 표현하자면 그저 늘 불만이 많은 사람들이 지금은 세상에 경계가 존재하는 상태이므로 불만인 것뿐이라고 생각한다.
만약에 정말로 지구상의 국경선을 비롯해서 그 어떤 것이든 구분짓는 경계가 사라진다면 그 불만 많은 사람들이 행복해질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이번에는 경계가 없어서 재미없다고 할 것이다.

세상은 경계가 있어서 재미없고 부조리한 것이 아니다. 경계가 있기 때문에, 경계가 확실할수록 그 경계를 넘다드는 것에서 재미와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적으로는 생각보다 흥미로운 구성이었다. 그리고 문제제기 역시 일면 타당성이 있다고 생각된다. 

한 명의 감독이 나머지 두 명에게 간단한 편지글과 함께 의미있는 장소에서 촬영한 영상을 보내는 릴레이 형식으로 일종의 로드무비인 셈이다. 다큐멘터리 영화가 그렇듯이 예상치 못한 상황전개, 인물의 각본없는 발언에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이들이 담은 세계 곳곳의 장소는 세 친구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고, 영화의 소재인 '경계'와도 관련이 있다.
아니, 그 전에 이 세 인물 모두가 '경계'라는 소재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남북이 분단된 한국, 유고슬라비아라는 나라가 아예 지도에서 사라져 버린 세르비아, 동티모르 내전을 겪은 인도네시아.
...흠, 그런데 세계의 모든 나라들 중에 경계나 소속의 변화를 겪지 않은 나라를 꼽을 수 있긴 한 건가?

세 명의 감독들에게 일장일단이 느껴졌다. 장단점이라기보다는 좋았거나 거슬렸거나 했던 부분이랄까. 이런 건 사자성어로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개인적으로 블라디미르 감독의 영상들이 가장 좋았다. 영상 자체의 아름다움이 컸다. 허를 찌르는 잔재미 같은 것도 있었고, 가장 꾸밈없이 느껴졌다. 
단, 고층빌딩을 짓는 일자리를 찾아 싱가포르에 모여든 아시아 각국의 건설노동자를 담은 화면만은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다. 그 정도의 고되고 위험한 노동은 지금 당장 서울의 건설현장에서도 많이 찾아볼 수 있을 거다. 자기네들은 꿈을 가지고 쉬는 시간에는 짬짬이 춤추며 웃고 떠들고 노동을 즐길 줄 아는데 그걸 보고 그렇게 짠해하기만 해야 하는 건가?
그렇다면 선진 유럽인으로서 베트남으로 가족 여행을 갔을 때 구두닦기 소년이 갑자기 바가지를 씌우려 할 때도 화를 내지 말았어야 하는 것 아닌가. 팔이 아파서 자리를 바꿔가며 힘겹게 노를 젓는 아주머니 사공들에게 팁도 두둑히 주고 물건도 많이 사줬어야 하는거지. 노 젓는 아주머니들이 얼마나 딱해 보이던지 저것이 주력 관광코스라면 절대 베트남으로 여행가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모터보트 있는 곳이 오히려 더 인간적이고 낭만적이다.

'국경이 없는 나라가 이 세상에 있다면 세상은 훨씬 재미있는 곳이 될꺼야'라는 이 영화의 홍보문구는 루디 감독의 메시지에서 나온 것이다. 그런데 이 문구를 뒷받침하는 설득력은 부족했다.
루디감독의 첫 에피소드에서 나온 문구인데 뜬금없이 느껴진다. 인도네시아 출신 여성이 일본으로 건너와 일본인 남자와 함께 가정을 이루고 사는 모습을 담은 에피소드다. 그녀는 단순히 음식이 그리울 때 고향생각이 난다는 심경 정도만을 밝혔을 뿐이다. 인도네시아 아내(아마도)와 함께 알콩달콩 살고 있는 일본인 남자에게 인도네시아에 대한 이미지를 따져 묻는 듯한 감독의 질문도 눈살이 찌푸러졌다. 
먼 고향의 음식과 경계의 상관관계? 경계가 허물어지면 멀리 있던 곳의 음식을 그리워하지 않아도 되는 건 아니지 않나. 애초에 자연환경조건에 맞게 발달하는 것이 음식문화인데.
이주자로서 일본에 잘 적응하며 살고 있는 사람도 애써 불쌍하게 치부(?)하고 공감을 얻으려하는 것 같아서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루디 감독의 인도네시아 갈랑섬 난민촌 캠프 편은 좋았다. 기억력이 열라 좋은 똑독한 인도네시아 주민이 혼자서 거의 다 캐리해준 작품이긴 하지만. 똘똘하게 생긴 이 남자의 기억력은 정말 후덜후덜할 정도로 좋다. 통일 베트남에서 탈출한(아마도 공산주의 치하가 싫었던 쪽이겠지?) 난민 수 천명을 받아주었을 당시를 듣는 사람 머릿속에 그려주듯 이야기 솜씨로 묘사해낸다. 베트남 난민들은 인도네시아 본토민과의 문화적 오해로 고생을 하기도 했지만 넉넉치도 못하고 쫒겨온 가운데에도 고향의 공갈빵을 만들어먹고 손톱도 치장하는 등 소소한 낭만과 여유는 즐길 줄 알았던 모양이다. 보트에서 떨어져 죽고, 지병이 있으면 낙오되고 이렇게 목숨이 왔다갔다 하는 절체 정명의 순간에도 살아남은 사람들은 어떻게든 살게 마련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문정현 감독은 전작에서 다뤘던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한 가족의 후일담을 들려주었는데 이 부분은 상당히 흥미로웠다. 전작들을 찾아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하지만 감독의 실제 삼촌인 재일조선인 어르신의 이야기는 뭐랄까 인간적으로는 안됐다 싶으면서도 그 사연을 온전히 이해하긴 힘들다.
사실관계는 이러하다. 일제 시대 때 일본으로 건너갔던 삼촌의 아버지는 슬하에 남매를 두었다. 남매 중 여동생은 북한으로 들어갔다. 그러니까 삼촌은 오빠로서 평생 북한의 여동생을 뒷바라지해 왔으며, 아버지가 여생을 보내고 육신이 묻힌 남한을 고향으로 생각하고 살아왔 지만 재일조선인 신분으로서는 입국조차 쉼게 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남한 국적을 취득하면 북한에 갈 수 없고 여동생과 인연이 끊긴다.
얼마 남지 않은 여생, 아버지 산소에 인사하고 아버지의 나라 남한땅을 자유롭게 밟고 싶었던 삼촌은 마침내 한국 국적을 취득하기로 결심하고 여동생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려던 찰나였다. 북에 있던 여동생은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그가 시달렸던 선택의 고뇌는 참 슬프게도 홀가분해져버렸다.
하지만 내 생각은 이렇다. 일제 치하에서 일본에서 조선인으로 살기도 물론 힘들었을테지만 아무튼 선택에 의해 침략된 조국을 떠난 것에서 비롯된 일이다. 게다가 후에 얼마든지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었다. 정보가 없었던 것도 아니고. 애초에 북한땅에서 살던 것도 아니고 일본에 있다가 북으로 가고 시집을 가고 아이를 낳고...그것 역시 본인이 선택한 거다.
그리고 삼촌도 자신의 입지를 선택한거다. 대한민국이 그를 버리고 못들어오고 막았던 것이 아니라 그가 북에 있는 여동생 때문에 보다 더 북한에 가까운 쪽으로 선택한 채 머물렀을 뿐이다. 그런 것을 외부적 요인 탓이라고만 할 수 있을까.
일본인도 아닌 북한인도 아닌 남한인도 아닌 재일조선인. 마음먹으면 북한에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는 재일조선인을 쉽게 남한 땅에 들인다는 건 나라로서도 힘든 결정일 거다. 남한 국적을 택하면 북한에 못가게 될 것을 걱정해 주저없이 남한을 선택하지도 못하는 재일조선인을 무조건 순수한 시선으로 보긴 힘들었을 거다. 우리정부의 입장도 그대로 이해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한 평생 북의 여동생 때문에 한국을 외면하고 살아야 했던 삼촌의 인생은 인간적으로 안타깝고, 한편으로 일본인으로 귀화하지 않은 것 역시 존경할만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북한이라는 집단의 알아주는 폐쇄성과 소통불가능한 체제적 특징 때문인데 누굴 탓하랴.

어떠한 경계 안에서 일어난 뜻하지 않은 사건들, 그로 인해 그 안에 평화롭게 살던 사람들이 더 이상 자신들이 머물던 공간에서 머무를 수 없게 된 정치적 상황같은 것이 개인의 삶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면 누구라도 자신이 어디에 속해야 할지 쉽사리 판단하기는 힘든 결정장애가 생길 수 있을 거다.
'경계'에 대해 과도하게 생각을 많이 하는 건 어쩌면 결정에 대한 극심한 스트레스에서 비롯되는 불평인 것 같다. 결정은 고통스러운 법이지만 그래도 부지런히 생각하고 판단해서 유리한 쪽으로 움직이고 능동적으로 살아야만 하는 것일텐데, 어려운 결정은 고통스러워서 차일피일 피하고 그렇게 어쩌다가 흘러오다 보니 이 위치에 있네, 자기 위치를 깨닫는 순간 여기가 불편하다 어쩌다 불평하는 것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것 같다.

경계를 허물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도리어 내심 더 우월하고 좋다고 생각하는 테두리를 정해두고 동경하는 것 같이 보이기도 한다.
일본인들이 인도네시아 사람을 좋게 생각해 주었으면 좋겠고, 디스트릭트 6에서 쫓겨나 더 허접한 곳으로 이주했더니 그 시절이 참 좋았고 지금 사는 곳은 민도도 떨어지고 그냥 헬이나 다름없음! 까놓고 말해서 북한사람되는 것보다 대한민국 국민이 되는 것이 낫긴 낫지 않은가...이런 것을 끊임없이 생각한다는 자체가 실은 경계를 구분짓는 행위, 더 나은 시스템에 속하고 싶다는 열망의 행위가 아니고 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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