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디워홀의 철학/미메시스_아름다운 속물같으니...나도 이제 워홀릭 ── 책

앤디 워홀 류의 사람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난 기본적으로 특이하고 괴짜같은 똘끼있는 정형적이지 않은 사람들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소위 예술가스럽다(?)고 불리우는 사람들 말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동경'은 한다. 단 멀리 두고 볼 때에 국한되는 것일 뿐, 절대로 지인이나 친구나 가족 등 가까운 자리에 두고 엮이고 싶지는 않은 그런 종류의 사람이다.


그러나...

앤디워홀이 직접 기록한 이 책을 읽게 된 후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난 여전히 위에 언급한 종류의 럭비공같은 사람들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달라진 이유는 워홀에 대한 새로운 정보를 얻었기 때문이다. 일상적이고 속물스럽기도 하고 틀에 박히기도 한 부분이 많은 나와 비슷한 부류의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갖게 하는 그의 말.

그동안 내가 앤디 워홀을 좋아하지 않았던 이유는 인터넷 검색창에 단 한 번도 그의 이름을 넣어본 적이 없을 만큼 인물 자체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걸 깨달았다.

더 웃긴 것은 앤디 워홀의 작품들은 상당히 좋아하면서도 말이다.

그가 생각보다 멀지 않은 시기에 생존해 있던 사람이라는 것도 새삼 놀라웠고, 생전에 아티스트로서(혹은 비즈니스맨으로서) 성공해 부와 명예를 누렸지만 그 삶은 순탄치 않았고 또한 그리 길지도 않았다는 것 역시 새롭게 다가온 사실이다. 오죽 기구하면 미친 정신병자같은 여자에게 총알빵을 다 당하고;;;


그는 지극히 자본주의적이고 민주주의적인 사람인 것 같다. 

워커홀릭처럼 일을 하고 그로 인해 돈을 버는 것을 즐거워 했다. 거리의 가난한 거지에서부터 게이에 이르기까지 타인의 다양성을 존중하고,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들어주고, 처자식을 거느리기에는 자신은 책임감도 별로 없고 성격이 너무 지랄맞다며 주제파악도 기똥차게 잘하고...아무튼 초 이기적이고 속물적 인간이라는 세간의 평가와 다르게 난 그가 어느 면으로는 통달한 인격자처럼 느껴졌다.

타인의 삶의 방식에 대해 관대하면서 자신의 삶에 대해서는 철저한, 의외로 순수하고 보수적인 면이 있던 사람 같다. 어찌 보면 진보적인 팝아트의 선구자라기보다 꼰대 할아버지가 쓴 듯한 착각이 들기도 했다. 


특이했던 건 앤디 워홀 그 자신이라기보다는 그 주변인들과 그를 다루는 각종 미디어가 아니었을까. 그의 기록들은 실제로 그의 녹음기에 담긴 지인들과의 대화를 녹취하고, 그에 대한 자신의 논평(?)을 덧붙이는 식으로 되어 있다. 그의 글에는 크게 공감할 수 있었다. 녹음기에서 발췌한 지인들의 말들은 주로 의식의 흐름 기법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실제로 저런 사람이 존재했다는 것이 신기하다 싶을 정도였다.


아무쪼록 앤디 워홀에 대해 갖고 있던 오해들을 풀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 걸 다행으로 생각한다.

게이로, 그러면서 여자에게 나쁘게 굴었던 남자로, 팩토리의 수많은 스타와 예술가 지망생들을 열정페이로 부려먹은 악덕사업가로 불리우기도 하지만 (이 문제에 관해서는 사업 스킬이 발전된 후에는 반성하고 시정하려 고심한 흔적이 보인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 자신의 인생을 마음껏 펼친 사람. 그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후손이 없음이 안타깝긴 하지만, 만약 그랬더라면 나는 그를 존경까지는 할 수 없을 것 같다.


===========발췌============


"우리가 아이로 살아가는 시간이 지금보다 훨씬 더 길어야 한다. 지금 우리는 너무 긴 시간을 살고 있으니까. 삶이 길기 때문에 모든 오래된 가치와 그 가치들의 적용이 쓸모없어지는 것이다. 사람들이 여섯 살 때 섹스를 배우고 서른 다섯살에 죽는다면, 여덟살에 섹스를 배우고 여든 살에 죽는 요즘 사람들보다 훨씬 문제를 적게 겪을 것이 분명하다"

- 미래학자 포스를 풍기는 워홀의 명언.


"나는 실제로 <미인들>에게는 그다지 관심이 없다. 내가 진짜 좋아하는 사람들은 <토커, 말 잘하는 사람들>이다.

...내가 왜 촬영보다 녹음을 더 좋아할지 보여준다. 수다스러움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 말을 잘하는 것과 말이 많은 것은 다르다는 것을 파악하고 있었던 워홀.


"나는 신선한 마늘과 신선한 바질, 신선한 타라곤을 찾기 위해 며칠씩 보내면서도 소스용으로는 토마토 캔을 쓰는 요리사들을 알고 있다. 그들은 괜찮다고 말을 하지만 나는 그것이 괜찮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 워홀은 건강을 생각하는 편이었던 것 같다. 그는 머리가 좋다. 타인의 이율배반적인 면을 잘 파악한다.


"나에게는 언제나 아주 아름다운 것으로 보이는 세 가지 물건이 있다. 발이 편한 오래된 내 구두, 내 침대, 해외에서 귀국할 때 거치는 미합중국 세관"

- 돈이 많아도 그 자신이 톡톡히 누리지는 못했던 것 같다. 돈을 쓸 시간도 없이 일을 한 모양이니까. 또한 자신의 조국인 미국을 사랑했던 사람.


"아트 비즈니스, 비즈니스 아트"

"나는 <비즈니스>를 최고의 예술이라고 생각했다. 비즈니스 아트는 예술 다음에 오는 단계이다. 나는 상업아티스트로 출발했지만, 비즈니스 아티스트로 마감하고 싶다. 

나는 아트 비즈니스맨 또는 비즈니스 아티스트이기를 원했다. 비즈니스에서 성공하는 것은 가장 환상적인 예술이다.

....돈 버는 일은 예술이고, 일하는 것도 예술이며, 잘되는 비즈니스는 최고의 예술이다."

- 웬지 속물같지만 너무나 멋진 말이다. 비즈니스 그 자체가 예술이라니 정말 멋진 비유다. 


"나는 늘 자투리 일이나 하다 만 일을 마무리하기를 좋아한다. 나는 늘 누구나 쓸모없다고 생각하는 일, 포기한 일에 아주 재미있는 일이 될 수 있는 잠재력이 들어 있다고 생각했다"

- 자유분방한 사람이지만 하고 싶은 일만 했던 것은 아니다.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서는 하기 싫은 일을 거치는 것이 필수라는데 그 역시 마찬가지다. 남들이 지루해하고 의미없다 생각하는 작업들을 심지어 즐기기까지 했으니.


"냉정한 사람들은 뭔가를 해낸다. 냉정한 사람들은 표준치의 감정 문제를 겪지 않는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그러한 감정 문제 때문에 일에서 지지부진하다.

...나는 나이가 든 사람보다 젊은 사람이 더 많은 문제를 갖고 있다고 생각했다."

- 그가 백발의 가발을 착용하고 젊은 청년일 때부터 나이들어보이는 변장(?)을 하게 된 이유이다. 의도한 바이건 아니건 비즈니스맨으로 제대로 보이기 위한 슬기로운 선택이었던 것 같다. 그의 톡톡 튀는 예술과는 다르게 그 외모에서 느껴지는 깔끔한 이미지와 안정감 덕분에 더 크게 성공할 수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나는 나를 끼워주는 것을 좋아하지 따로 모시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당신의 말을 잘못 이해하는 사람들과 일하면 <변화>를 얻는다." 

- 자신의 작업이 수많은 다른 아티스트들과 협업한 결과물임을 결코 부인하지 않는다. 그의 작품에 그만의 아이디어가 있는 그대로 구체화된 것은 아님을 솔직히 시인하고 있다. 디렉팅이라는 것이 원래 그렇긴 하지만. 디렉팅을 하는 도중 의도가 뒤틀어져도 그다지 예민하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어쩌면 그 주위에 그만큼 재능있는 예술인들이 모여 있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하고.


"부자라고 해서 더 웃기는 버전의 <위험한 진실, Truth or consequences>을 볼 수 없고, 더 무서둔 버전의 <엑소시스트, The Exorcist>를 볼 수 없다."


"내가 아는 어떤 이들은 매우 편하게 청소부를 대하고 어떻게 해달라는 말까지 하는데 나는 그러질 못한다"


"예전에는 성공하려면 믿음직스러워야 하고 좋은 옷을 입어야 했다. 주위를 둘러보라. 방법은 옛날과 똑같지만 이제 좋은 옷을 입어야 하는 것은 아닌 듯 싶다.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그것이 전부다. 부자 될 생각을 하라. 하지만 외양은 가난하게 보여라"


"나에게 가장 좋은 시간은 돈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없을 때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돈 가지고 다니는 방법은 실상 단정치 못하다. 구겨서 뭉치가 된 상태로 가지고 다니기 때문이다. 종이백에 넣어 다니면 좋다.

부자들은 구치나 발렌티노 지갑 같은 데 돈을 넣어 가지고 다니지 않는다. 기다란 서류봉투에 10달러짜리에 종이 집게를 끼우는데 5달러짜리와 20달러 짜리에도 끼운다. 돈은 거의가 새것이다. 은행에서 특별 배달부를 통해 보내 온 것이다."


"돈을 쥐고 있을 때 나는 병균을 쥐고 있다는 느낌을 갖지 않는다. 돈에는 어떤 특별 사면 같은 것이 있다. 돈을 쥐고 있을 때, 나는 내 손이 그렇듯이 지폐에도 병균이 없다고 느낀다. 내가 손으로 돈을 넘길 때 돈은 나에게서 완전히 깨끗한 물건이 된다. 나는 그 돈이 어디서 왔는지 누가 그것을 만졌는지, 무엇으로 만졌는지 모른다. 내가 돈을 만지는 순간 그것의 과거는 지워진다."

- 돈에 대한 워홀의 멋진 말들 ㅋㅋ 좋아하고 벌고 싶어 하되 노예스럽거나 졸부근성이 드러나지는 않은 돈에 대한 철학.


예술가는 사람들이 가질 필요가 없는 것들을 생산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 - 사람들에게 주면 좋을 거라고 생각하는 무언가를 생산하는 사람이다.

- 자신이 하는 예술에 대한 솔직한 철학


"나는 비행형 사람이 아닌 것 같은데, 비행 스케줄을 갖고 있다. 그래서 비행생활을 해야 한다. 나는 내가 현대적인 사람이라는 사실을 좋아하기 때문에 내가 비행을 좋아하지 않는 것이 몹시 당혹스럽다"

- 멋지다. 난 그러고 싶지 않은데 자꾸 이렇게 잘나가네...뭐 이런 것.


"확실히 똑똑함은 당신을 짓눌리게 할 수 있다. 만일 당신이 똑똑해야 할 문제에 똑똑하지 못하다면 말이다"

- 똑똑하지 않은 사람은 천지분간이 안되기 때문에 그만큼 짓눌림도 덜하다는 의견인 듯. 똑똑하지 않은 사람도 짓눌림 비슷한 건 느끼는 것 같지만, 그 원인은 의식주 문제에 기인해서 타인에게 동정심을 유발하거나 남을 시기하고 질투할 때 정도에 국한되는 듯하다. 어떻게 바르게 살아가야 할지 따위의 짓눌림은 확실히 덜한 것 같다.


"어울릴 사람이 필요하다고 느껴서 막역한 친구들을 찾았을 때가 있었는데, 나는 아무도 찾지 못했다. 그러니까 내가 정말 혼자라고 느낀 것은 가장 혼자 있고 싶지 않았던 때였다.

그런데 내가 혼자되는 게 더 낫고, 자신의 문제를 내게 말하는 사람이 없는 것이 더 좋다는 결정을 내리는 바로 그 순간, 이전에 한 번도 본적이 없는 사람들이 내 뒤를 쫓으면서 내가 듣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결정한 이야기를 털어놓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무언가를 소망하기를 멈추는 순간 당신은 그것을 갖게 된다. 나는 이 명제가 절대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대중들과의 밀당의 제왕이었던 워홀다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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