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러의 멜랑콜리아, '스탕달 증후군' 비스무리한 걸 느끼게 해줬던 유일한 예술작품 미분류

스탕달 증후군.

예술품을 보고 감동한 사람이 이상반응을 나타내는 현상으로써 심한 경우 소리를 지르거나 자기도 모르게 작품에 달려들어 훼손하기도 한다는 다소 섬뜩한 증상.


감성이 이성을 압도해서 스스로를 제어할 수 없는 상황에 속하는 것 같아 섬뜩하다고 표현은 했지만 솔직히 경험해보고 싶긴 하다.

그리고 더 솔직한 마음을 말하자면 여태 예술품을 보고 감동을 받아본 적이 별로 없다. 눈꼽만큼의 감동도 없을 대가 허다하다.

실제 작품 앞에 섰을 때 겨우 느껴지는 건 '사진으로 보던 것과는 많이 다르네. 실물이 낫긴 낫다. 실감난다. 생생하다' 정도였지 '감동'이라는 단어를 가져다 붙일만한 경우와는 거리가 멀었다.

게다가 어떤 경우는 '차라리 사진으로 보던 게 낫네' 싶은 때도 있고.


참고로 사진보다 실물을 보고 실망했던 대표적 경우는 경주 수학여행 때 가서 본 첨성대, 다보탑, 석가탑 3종세트였다. -_-;; 책과 동전에서 보고 엄청 웅장한 걸 상상했는데 실제로 보니 그렇지 않았던 거다. 지금보다 눈높이도 낮은 초등학생 어린 눈에도 너무 아담해 보였던 것.


'스탕달 신드롬'이랄 것 까지는 없고.

그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복중태아였던 시절 그의 모친이 어느 미술관에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작품 앞에 섰을 때 갑자기 디카프리오가 발차기를 했고 이를 특별하게 여겨서 이름까지 레오나르도로 지었다는 일화처럼, 그저 이런 정도로 살짝 이상야릇한 흡인력과 놀라움, 약간의 소름끼침을 느꼈던 적이 딱 한 번 있다.


그 작품은 바로바로바로 뒤러의 '멜랑콜리아'라는 작품이다.

영국에서 본 것도 아니고 이 작품이 <대영박물관 한국전>이라는 이름의 전시를 위해 비행기를 타고 물건너 왔을 때 서초동 예술의 전당에서 본 거다.

사실 난 이 전시가 매우 지루했다. 언론에서 대서특필하고 엄청 유명한 작품들이 최초로 대규모로 들어왔다고 하며, 관람객도 장사진을 이루었지만 내게는 그냥 그랬다.

전시를 공부없이 그냥 보러 간 것도 아니었다. 나름대로 도슨트 자료도 숙지하고 언론 보도도 챙겨보고 관람한 거였는데 람세스상도, 미이라도, 심지어 내가 좋아하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스케치들도 별로였다. 그렇게 다리만 아프고 재미도 감동도 없다고 후회막심해 하던 중 이 그림이 나타났다.


정확히 말하면 동판화이다. 동판을 새겨서 잉크를 바른 후 종이에 찍어내도록 만든 회화의 한 장르.


이 그림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심층관찰이라면 관찰이고, 멍때리고 보고 있었던 거라면 또 그렇다고 볼 수도 있겠다. 편집증 돋는 섬세한 새김새김에 기절초풍할 정도였고 동판을 새기는 뒤러의 손길이, 영혼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순간이지만 소름이 돋았다. '미이라'를 보면서도 별 느낌이 없었는데 말이다.

작품 자체가 아름다워서였는지 작품을 만든 사람의 장인정신이 대단하게 느껴져서였는지 분간이 잘 안되지만 나쁘지 않았던 경험이었다.

예술작품 앞에 선 사람이 '감동하는 척' 호들갑을 떠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감동'을 느낀 나머지 어떻게 될 수 있겠다는 걸 그 때 처음으로 깨달았다.


그런데 또 웃긴 것은 이 그림을 소장하고픈 욕구가 이는 건 절대 아니었다. 

'얼마 정도 지불하면 이 그림을 구입해서 내 집에 걸 수 있을까?'라는 생각은 커녕, 그냥 준대도 가져오고 싶을 것 같지 않았다. 

내가 갖기에는 어쩐지 좀 으스스하고 을씨년스러운 물건인 것 같아서 별 소유욕은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도 그 신기한 아름다움과, 뒤러의 장인정신이 섬뜩할 정도로 오싹하게 느껴지게 하는 그 실물을 내 눈으로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끔 한다. 


이만하면 스탕달 증후군까지는 아니지만 그 비스무리한 정도는 되지 싶다. 그런데 아쉽게도 뒤러 이후 그런 충격에 가까운 감동을 느끼게 해 준 예술가는 아직 없다. 

작품을 마주한 경험이 아직 많이 부족해서일 수도 있겠지만.


여행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인류가 남긴 희대의 예술작품을 진품으로 감상하기 위해서라면 내가 직접 해외로 나가볼 만한 가치도 있겠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해보게 됐다. 그런데 난 아직 한 번도 안나갔고 딱히 목표물도 정하지 못했다.

다 귀찮으니까 되도록 작품들이 비행기를 타고 들어오는 일이 많았으면 좋겠다. 


2005년 4월 12일부터 7월 10일 사이의 어느 날이로군.

이후 대영박물관은 5년만에 한번 꼴로는 우리 나라로 작품들을 비행기 태워 보내곤 했던 걸로 안다.


당시 도슨트 자료 속에 포함된 멜랑콜리아 설명. 에휴 참, 그림 저걸 쓰려면 그냥 텍스트만 보는 게 낫다고 봄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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