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션(2015)/앤디위어/알에이치코리아_감성팔이가 빠진 우주에서 여럿 죽을뻔한 이야기 ── 책


영화를 보지는 못 했다.
누군가에게 "이 영화 흥행하던데 재밌냐?"라고 물어봤는데 어쩐지 슬프고 막막한 영화라고 말을 하더라. 물론 재밌다고 얘기해 준 사람도 있었지만 내 귀는 어이없게도 그 누군가의 말에 꽂혀버렸다;;;
그래서 난 화성에 버려진 우주인이 슬픈 얘기인 줄로만 알고 마션의 흥행돌풍을 예사롭지 않게 무시하고 지나쳐버렸다.
알고 보니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고진감래 스토리였네.

책을 읽고 보니 영화도 참 재미있었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특히 맷 데이먼이 배역에 딱 어울렸을 것 같다. 하지만 극장에서 놓친 건 구태여 찾아보지 않는 나의 특성상 언젠가 재개봉을 하지 않는다면 딱히 보게 될 일은 없을 영화다. 항공우주과학분야 종사자나 영화 제작자가 아닌 이상 책 또는 영화, 둘 중 하나만 택일하면 충분할 것 같단 생각이 든다.

책을 읽은 느낌은 <아이언맨>, <슈퍼맨>, <배트맨>과 같은 히어로물의 또 다른 형태인 것 같다. 절대로 실패하지 않을 만큼의 재미와 감동이 담겨 있는 . 

'죽을지도 모른다'와 '죽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두 가지 가능성 사이에서 끊임없이 내적, 외적 갈등을 해야 하는 와트니는 참 매력적인 불굴의 의지를 지닌 인간이다. 지구 상에서 가장 진화한 과학적 지식도 많고, 현명하고, 튼튼한 남자 사람이라서 읽는 내내 흐뭇했다. 뇌 회로가 꼬이지 않는 느낌이었다.

내가 원래 우리나라로 치면 카이스트 출신 종류의 천재들이 벌이는 기상천외한 에피소드들을 좋아하는 편이다. 앞뒤 안 맞는 감성팔이식 별거아닌 걸로 심각한 척하기 스토리보다 훨씬 나아서.
그런 측면에서는 어느 정도 만족스러운 독서였다. 이공계의 천재, 영재, 수재라 불리는 사람들이라면 충분히 이렇게 이성적이고 냉철한 브레인스토밍을 동반한 연속적 선택 과정을 거쳐 무언가를 이룩해낼 수 있을 거라고 굳게 믿고 있는 사람이라서. 
만약 문학이나 철학 천재나 영재, 수재들이 모여서 무언가 중차대한 선택을 반복함으로써 결과물을 만들어내야 하는 상황을 소설로 쓴다면? 책은 순식간에 10권짜리 장편이 될 거고 조각조각 귀에 확 꽂히는 명언들이 난무하겠지만 나 개인의 취향으로 끝까지 읽어낼 수는 없을 것 같다. ㅋㅋㅋㅋ

최악에서 최대의 행운을 끄집어내며 이상적으로 전개되는 스토리가 요즘 유행하는 말로 '사이다'스러워서 좋기도 했다.
하지만 그 행운이라는 것도 과학적으로 충분히 예측 가능한 범위 내에 있던 것들이었다. 예측 가능한 범위라는 것은 '최악-최선' 사이의 상황인데, 양 극단의 상황 모두를 와트니와 나사와 헤르메스의 집단지성은 계산해냈고 그들의 성공과 실패는 그들이 머리를 모아 예측한 경우의 수 안에 모두 속한다. 

그래봤자 이건 공상과학소설이고 현실은 시궁창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머지않아 우주여행 시대가 도래한다고 믿고 있는 나는 어쩐지 내가 죽기 전에 이런 에피소드들이 생길 것만 같은 느낌을 받았다.
현실적으로도 와트니 같은 인간이 없을 거란 생각은 하지 않는다. 와트니를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기꺼이 담보 잡는 대원들이 없을 거란 생각도 하지 않는다. 육지에서의 전쟁 역사 속에도,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보이지 않는 전쟁 속에서도 그런 의인들이 아주 없진 않으니깐.
그런데 중국이 쏘려던 로켓을 막대한 손실을 뒤로하고 미국 우주인을 구하는 데 내주었다는 대목에서 웃음이 나왔다. 그래, 좋은 게 좋은 거니깐. 큭큭

----------발췌 + ------------------
"우리가 여기 있는 동안 정부에서 대주는 돈이 1초당 십만 달러야"
- 우주인들은 체험학습에 바쁜 초등학생 못지않게 지구에서 가져온 숙제에 치여 바쁘게 움직여야 한다. 그래도 이렇게 생각하기는 쉽지 않은데. 국회의원들도 제발1년에 한 번꼴로 만이라도 이런 생각을 한다면 참 좋을 텐데...

"우주는 어차피 위험한 곳입니다. 그게 우리가 하는 일이에요. 늘 안전한 쪽으로만 가고 싶으면 보험회사에 가셨어야죠. 그리고 심지어 이건 국장님의 목숨이 걸린 일도 아닙니다. 대원들이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일이란 말입니다"
- 그냥 '보험회사'드립이 웃겼다. 보험회사에 '안전'이 있을 거라는 확신과는 별개로 말이다. 

"넌 어릴 때부터 과학을 아주 좋아했지, 참 대단했어. 
...모든 아빠들이 꿈꾸는 그런 딸이었어. 그런데 갑자기 커다란 폭탄을 타고 화성으로 날아가 버리다니, 말 그대로 폭탄을 타고 날아갔잖아."
그러자 조한슨이 지적했다.
"엄밀히 말하면, 추진 로켓은 궤도에 진입하게만 해준 거예요. 저를 화성까지 데려다 놓은 건 원자력 이온엔진이었죠."

- 최악의 상황을 앞두고도 공과 사, 참과 거짓은 분명히 해야 한다는 과학적 인간의 냉철하고도 이성적인 면모. 난 이런 인간을 좋아해서 ㅋ




덧글

  • LionHeart 2016/02/24 20:12 # 답글

    중국이 로켓추진체를 내주는 부분은 단순한 선의가 아니라 뭔가 사정이 있어서 선심쓰는 척 하면서 써버리자란 식으로 처리한 것으로 기억합니다.
    책이 아무래도 영화보다 많은 내용을 담고 있기에, 영화를 감상하지 않으셔도 내용면에서는 크게 손해는 없을 겁니다. 다만 영화에서는 배경이라거나 인물들의 표정 연기 같은 것들이 매력적이었습니다.
  • 착한마녀 2016/02/24 21:16 #

    앗. 영화는 좀 더 현실적(?)이었군요. 책에선 우주와 기술을 사랑하는 과학자들끼리의 동기애나 연대의식이 많이 작용한 것으로 나왔거든요.
    실은 상상했던 것들...헤르메스나 로버 같은 것들도, 무중력 상태에서의 움직임 같은 것들도 영화 기술팀이 어떻게 구체화했는지 궁금하긴 해요. ㅋㅋ
  • 함월 2016/02/25 02:03 #

    영화에서는 좀 간략하게 되어서 그런데, 책에서는 좀 더 분명하게 나왔죠.
    기본적으로는 선의가 맞고, 반대급부로 얻어낼 것은 높은 분들을 납득시키기 위한 구실에 가까운 묘사였습니다. 영화에서는 생략되었지만 책에서는 이런 고민이 자세하게 나와서 좋았죠.
    수 년간 공을 들인 자체 초대형 탐사 미션을 포기한다는 안타까움이나...

    아무튼 책->영화로도 많이 잘렸지만, 개봉 전 영화를 편집하면서도 많이 잘리지 않았나 싶습니다.
    책에서 국장이 미션에 성공했을 때와 실패했을 때 들고 발표하는 파일의 색깔이 다르다는 이야기가 인상깊었는데, 영화에서도 장면 자체는 나오는데 그 쪽 스토리을 알 수 없는 설명은 하나도 없더군요.
  • 착한마녀 2016/02/25 22:11 #

    함월님/ 저의 경우 홍보업무를 해온 사람이라서 그런지 서로 다른 발표파일은 무심코 넘겨졌나봐요 ㅋ
    뭔 일 있을 때는 홍보 책임자 선에서 여러가지 경우의 보도자료와 발표문을 준비하는 것이 당연한 롤이에 별로 인상깊게 느끼지 못했는데 그 부분을 인상적으로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더라구요. 홍보담당자 주도가 아닌 국장님 단독으로 준비한 듯한 건 조금 특이하긴 하지요.
    추측일 뿐인데 홍보의 꽃이 바로 영화장르라서 감독님이나 제작자들도 그런 가정이 익숙하게 느껴진 나머지 우선 순으로 생략했을 것도 같아요.

    제 경우는 식량도 못받고 와트니도 구하지 못했을 최악의 경우 조한슨이 최후의 생존자로 정해지고, 일이 잘 된 후에 다른 대원들이 누구 먼저 먹으려고 했냐느니 농담따먹던 부분이 유독 기억에 남아요. -0-;;
  • 사과쨈 2016/02/25 04:07 # 답글

    영화를 먼저 보고 책을 보면 더 재미있는데.. 아쉽네요. 지금 아카데미 기획전으로 cgv 여러군데에서 다시 상영중입니다. ^^~
  • 착한마녀 2016/02/25 22:14 #

    말씀 듣고 찾아보았는데 명동CGV에 GV 상영이 있더라고요. 유독 이것만 매진. 하아...이렇게 또 하나의 기회가 지나갑니다 ㅠ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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