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주의자 선언(문유석/문학동네)_자유를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달라는 것 ── 책

마치 움베르토 에코의 평작 수준의 글을 읽는 것 같았다. 이건 분명 좋은 뜻으로 하는 말이다.
움베르토 할배가 한국에서 산다면 분명 이런 소재로 글을 쓸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읽었다.
그 결과물은 문유석 판사의 글보다는 더 신랄하고 시원한 '사이다' 같았을 거다.

다소 모순적인 두 가지의 공감각을 느꼈다.
1. 현직 판사임에도 불구하고 용기있고 솔직하게 마음을 까발려 쓴 글이다.
2. 현직 판사이기에 몸을 사릴 수밖에 없어서 적당한 선에서 얼버무린 것 같은 글이다.

2번 평가는 다소 부정적으로 보일지도 모르지만 내 개인적 생각은 나쁘지 않다. 충분히 이해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조직에 몸담은 사람으로서 당연하고도 훌륭한 처신이라고 생각한다. 두 세번 돌려 생각한 결과물일 것이기에.
저런 평가를 하게 된 이유는 '멈칫'하게 하는 대목에 맞닥뜨린 적이 간혹 있어서.
마치 '술담배에 쩔어 살면서 건강을 지킬 수 없다'고 생각하는 나와는 달리 '술담배를 먹으면서도 충분히 건강한 삶을 영위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 같아서 어떤 구절을 읽을 땐 엄청 머리가 꼬였달까.
한가지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아래에 좀 더 얘기하겠다.

"물론 미국식 능력주의가 만병통치약은 아니고, 거기서 소외되는 평범한 사람들도 모두 사회에서 제 역할을 하고 자긍심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자본주의를 할거면 우선 제대로 된 자본주의를 하면서 그 다음도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다양한 능력들이 각기 다른 기준을 통해 정확하게 평가받고 보상받는 자본주의 말이다"

능력이 있는 사람에게 보상이 따르는 자본주의, 그것이 판사님이 궁극적으로 꿈꾸는 제대로 된 자본주의 아닌가?
윗글 앞에는 무능력한 사람들이 단지 먼저 자본권력을 차지하고 있었단 이유만으로 장그래 같은 청년들을 가로막는 사례들이 소개되었다.
그렇다면 저 위의 문장은 좀 더 명확하고 단순하게 '지금의 모자란(?) 자본주의가 아닌 진정한 자본주의가 되려면 미국식 능력주의를 조금은 따라가야 한다' 정도로 정리가 됐음 좋지 않았을까 감히 조심스레 지적질 해본다.
저런 문장으로 정리가 된 이유는 '미국식 능력주의가 좋긴 한데 부작용도 있고, 자본주의가 좋긴 한데 폐해도 있고' <- 이 두 가지를 모두 알고 있는 유식한 사람이라 모두의 오해를 사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말을 하려는 의도였던 듯. 그런데 내 머리는 꼬였다 -_-;
이 책을 읽던 시점 기준으로 '메르스 사태'까지 나와서 깜짝 놀랐을 정도로 시의성이 죽이는 트렌디한 사례들이 소재로 다뤄진 책이라서 그런지 약간의 조급함이 느껴졌다. 퇴고 시간이 길었다면 좀 더 완벽해졌을 것 같다.

아무튼 그의 통찰력은 정말 존경스럽다. 
간결하게 씌어진 글 이면에 쌓여있는 많은 것들 역시 느껴진다. 독서량, 허무맹랑한 경험들 그리고 그런 것들을 기억화해서 저장하고 동시다발적으로 분석중인 대단한 두뇌의 힘.
얼핏 '개인주의'와 하등 관계가 없을 것 같은 소재도
실은 '개인주의' 멸시 풍조 때문이었지롱~ 하고 일깨워준다. 
이를테면 우리나라 공교육이 쉬운 물수능이 되면서 변별력이 약해지고, 개천에서 용나기 힘든 구조가 되었다는 그의 분석.
내가 바로 그 물수능으로 급변한 시점에 크게 피해를 본 장본인이라서 ㅠㅠ
그건 바로 '남들이 점수 잘 나오면 나도 잘나와야해' 라는 행복을 성적순이라고 마음대로 재단하는 기성세대 구성원들의 의식이 정치와 정책 같은 요소와 작용한 결과라는 걸.
가난한 집의 잘난 놈을 어떻게든 끌어내림으로서 고만고만한 부유한 집안의 자식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또 그걸 지켜나가기 수월한 구조가 되었다는 그의 해석에 전적으로 공감하는 바이다.
판사답게 통계 등 탄탄한 근거를 빼놓지 않는 부지런함도 좋았다. 아니, 판사임에도 불구하고 법전에 기재된 내용의 틀을 벗어나...라고 해야 하나. ㅋㅋ 
 
각설하고 이 책의 주요 주제로 돌아와보면, 
사실 문유석 판사가 가진 '개인주의'에 대한 의견은 대다수의 평범한 사회인(특히 약자)들이 느끼고 있는 것들이다.
개인의 다양성과 행복추구권을 확실히 인정해 주는 사회였으면 좋겠다는 것.
미래로 갈 수록 분명 이런 사회가 될 거라는 건 확실하다.
영리하게도(?) 그 과도기에 서 있는 현재 시점에 이 사람은 마치 선지자처럼 자기 주장을 정리해서 책으로 낸 거다.
이런 책이 있음이 고마운 것은 손석희의 추천사처럼 내 구슬과도 같은 생각을 대신해서 잘 꿰었기에 '이런 글은 쓸 필요가 없게 된다'는 점이다.
(다만 그의 추천사 속에 있던 "요즘처럼 국가주의가 넘치는 시대에 개인주의라니..."라는 어구는 좀 이상하게 느껴진다. 전근대적 집단주의라면 몰라도 요즘이 무슨 국가주의라고. 의무복무중인 군인 정도를 빼고 실제로 나라를 위해서 뭔가를 희생하는 사람이 얼마나 된다고 ㅋㅋㅋ 다 자기 잘되고 싶어서 사는 시대에 좀 이상한 시각처럼 느껴졌다. 뉴스에 과도하게 매몰되어 사는 직업탓인가.)

솔직히 나 개인적으로는 이 사람의 책 제목이자 주제인 <개인주의>에 대한 내용에는 그다지 별 감흥은 없었다.
'어랏, 난 이미 이렇게 살아왔고 이렇게 살고 있는데? 나 뿐만 아니라 내 주위에는 이렇게 사는 사람들이 많은데?' 라는 생각을 했더랬다.

내가 겪어온 사회에서도 구심력이 강한 사람이 있고 원심력이 강한 사람이 꼭 있었다. 그러니까 '뭉쳐야 산다!'를 외치는 사람과 꼭 그렇지만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 어떤 조직에 과도하게 '뭉침'을 주장하는 사람이 있으면 스트레스가 발생한다.
단언컨데 그건 미개한 거다. 아직 개통되지 않은 생각.
내가 그런 것이 미개한 생각이라고 단언하는 이유는 많이 배운 사람일수록, 많이 가진 사람일수록, 경험이 풍부한 사람일수록, 존경받는 사람일수록, 좋은 회사일수록, 좋은 집안일수록, 국가건 마을이건 발전될수록, 시간이 흐르고 불안정한 상황이 안정기에 접어들수록 그런 현상이 덜하다는 걸 목격해왔기 때문이다.

흠...이쯤되면 나란 사람 괜찮은 사람, 발전된 사람, 내 주위도 참 진보적인 사람들로 가득하다는 '자뻑 결론'이 나는건가. 그래도 어쩔 수 없다 나름의 타당한 근거가 있는 걸.
한가지 예를 말하면 나와 내 동생 100일이나 돌을 친척들에게 알린 적이 없다. 물론 다른 사촌들도 마찬가지.
우리 집안은 집안의 어르신께 아이의 탄생을 알린 이후로 자기 자식에 대한 챙김과 각별한 관심(?)을 누구에게도 강요하지 않는다.
하지만 낳은 날을 바탕으로 100일, 돌 따져본 할머니나 삼촌이나 숙모들 중 올 사람은 나타난다. 잔치 준비를 안해서 먹을 것이 없으면 없는대로 새옷이건 금붙이건 자기 나름의 축하를 전하고 간다. 혹여 안 온 사람을 두고두고 뒷소리하는 것도 없다.
내가 이런 얘기를 하면 깜짝 놀라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런 것에 놀라는 사람들에 나는 더 놀랐고. 그런데 요즘 주위 얘기를 들어보면 점점 그런 사람들이 많아진 걸 체감한다. (요즘 돌잔치에 혈연관계 아닌 사람에게 초대장 돌리면 비웃음을 유발한다고 들었다.)
아무래도 우리 집안은 벌써 몇 십년 전부터 시대를 훌쩍 앞서 간 것 같다.

그래도 개인주의라는 화두가 한 개인의 성격이나 취향이 아니라 경제, 경영, 대중문화 등 다양한 분야와 관련성이 있는 광범위한 문제라는 걸, 그냥 "넌 좀 이기적인 녀석이야"라는 푸념을 듣는 것으로 끝나는 문제가 아니라 사회 구성원 전체의 행복지수와 맞닿아 있는 문제였다는 걸 알게 된 건 이번 독서의 큰 수확이었다. 

아직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법정 풍경이라던가 판사들의 업무프로세스 같은 것들, 그리고 미국에서 연수할 시절에 그가 보고 겪었던 사례들이나 북유럽권 국가들의 현실 문제 등 나의 선입견(주로 환상) 깨부수는 새로운 정보들을 얻을 수 있었기에 읽어보길 잘한 것 같다.

그리고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되겠지만 만약 법정에 설 일이 생긴다면 문유석 판사님 같은 분을 재판장으로 만나고 싶다. 공정한 판결에 대한 기대를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발췌 + a --------------- 


남들에게 인정받고자 치열한 인정투쟁을 벌이는 와중에 자신을 잃어가는 아수라장을 쉽게 관찰할 수 있는 곳이 SNS 공간이라고 하면 지나친 말일까.
...전하는 목소리들은 실제보다 더 비장하기도 하고, 더 화사하기도 하다. 아, 내 삶은 너무 완벽해요. 행복해 죽겠어요. 저 너무 예쁘지 않아요? 아무것도 모르는 것들이 깝죽거리는구나(나는 이렇게 아는 게 많은데 알아주지 않고). 세상은 썩어 문드러졌고 분노하지 않는 자들은 쳐죽일 비겁자들이다. 나는 이렇게 세상에 대해 고뇌하는 지식인이다 등등.
- 이글의 중제는 '인정투쟁의 소용돌이, SNS'다. 캬~

맛있는 음식도 내가 원치 않을 때 강제로 먹으면 배탈이 나듯, 타인과의 관계가 나의 선호에 따라 자유롭게 선택되는 것이 아니라 내 의사와 관계없이 강요되고, 의무와 복종의 위계로 짜이는데 이것이 행복의 원천이 될 리 없다.
...타고나길 남들과 어울리기 좋아하는 사람 중독증 환자들이야말로 행복해지기 쉬운 우월한 유전자를 타고난 것이다.
- 사람중독증 환자들이야말로 불행할 것 같은데, 내면에서 행복의 동기를 찾지 못해 타인과 함께하는 시간 속에서 자신을 잃어가는 SNS 중독증 환자들과 다를 게 뭐람?

경영자야말로 능력이 있어야 한다. 인재를 알아보는 능력, 그 인재가 능력을 발휘하는 것을 방해하는 조직 내 관료주의의 벽을 부수는 능력.
....학벌과 연줄로 자리를 차지한 중간관리자들은 일생 파벌 다툼이나 하며 진입장벽을 쌓고, 장그래 같은 젊은 인재들을 소모품으로만 쓰고 버리는 기업들에게 미래가 있을까.
- 사내의 파벌이나 진입장벽은 전근대적 집단주의에 기인한다. 개인적 행복추구를 못마땅해 하는. 경험상 쪼매난 사기업일수록 더하더라. 웃긴 건 사장이 더해 ㅋㅋㅋ

우아하고 친절하며 손에서 책을 놓지 않고 매일 운동을 하여 날씬한 백인 중산층들과 저질 TV쇼에 열광하며 정크푸드로 엉덩이가 산만하고 팔뚝마다 문신을 한 유색인종들은 사는 동네도, 애들 다니는 학교도, 식당도, 노는 곳도, 얻는 직장도 일목요연하게 달라 보인다. 물론 기회의 땅이니 할렘에서 커서 하버드 로스쿨 교수가 되어 있는 흑인도 있지만, 그 극소수가 실질적으로 분리되어 있는 사회구조를 덮기에는 부족해 보였다.
- 이율배반적인 대목을 또 발견. '개인주의'는 개인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각자 분수대로 사는 와중에 행복을 느낄 수 있도록 하자는 개념 아닌가. 날씬한 것을 우위에, 할렘을 하위에, 로스쿨을 우월하고 만족스러운 것으로, 문신하고 TV보고 놀면 불행한 것으로 보는 것은 행복을 천편일률적인 기준으로 재단하는 지극히 집단주의적인 걱정 아닌가.

재미있는 것은 이 지역에 주유소가 딱 하나 있는데 갤런당 2달러 33센트를 받어라는 점이다. 이렇게 비싼 곳은 미국 와서 처음 봤다. 하버드 로스쿨 근처 주유소는 2달러 9센트를 받고 있었다. 백인 중산층 거주지역 주유소보다 이곳의 기름값이 훨씬 비싼 이유는 뭘까?
...이들은 가격을 비교해 싼 곳을 찾아가는 등의 생각도 별로 안 한다는 거다.
요지경 세상이다. 뉴저지에 근사한 식민지풍 저택을 짓고 숲도 소유하고 있는 어누 교민은 반짝세일 정보를 주시하다가 단돈 299불에 7박 8일 카리브 해 크루즈를 다녀왔다고 자랑하고 나만 해도 책 하나를 살 때도 가격비교 사이트에서 최저가를 찾고 마일리지다 쿠폰이다 써가면서 호들갑을 떨고....
- 부촌, 빈촌 다 살아본 나도 같은 현상을 목격한 바 있다. 이것은 빈부에 따른 정보격차이기도 하지만 개인의 성향 탓도 있다. 성취욕이 강하고 승부욕이 강한 성향의 사람들이 부를 이뤘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 같다. 반면 당장의 편의를 추구하고 인내심이 별로 없는 사람들, 충동적 성향이 강한 사람들은 몇 푼 싸고 비싸고 때문에 골치 아픈 걸 오히려 불행하게 여길 것 같다.
이 역시 '개인주의'적 관점에서 보면 각자 행복을 추구하는 기준이 다른 걸로 넘길 수 있는 사안이라고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어느 한 쪽을 '요지경속'이라고 안타까워할 것도 없다는 수준으로 나는 문판사님보다도 더욱 마음을 비웠나 보다 ㅋㅋㅋㅋ
'요지경속'이라는 판사님의 안타까움이 '개인주의적 인간'이 되고픈 사람을 불편하게 만드는 시선 중 하나가 되는 셈 아닐까.

스웨덴이나 핀란드에서 공부한 한국과 일본 학생들의 글을 읽어보니 북유럽에서는 사춘기 학생들조차 자기 집이 부자인 티를 내지 않아서 뒤늦게 친구 집에 놀러가서 큰 부잣집인 것을 알고 놀랐다는 에피소드가 많았다. 북유럽 국가들도 자본주의 체제다. 재벌이 있고 빈부격차가 있다. 하지만 자기과시를 부끄럽게 생각하는 성숙한 배려의 문화가 정착되어 있기에 빈부격차가 실제보다 더 적게 느껴진다. 우리 사회는 아마도 그 반대일 듯하다.

- 이것에 대해서도 살짝 생각이 다른데, 우리 나라도 진짜 부자들은 도리어 가난한 척을 잘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더라뭐. 자기과시를 하는 사람들은 진짜 부자들에 비해서 실속이 덜한 부자들이랄까. 물론 그들도 부자이긴 하지만 그다지 탄탄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 저러다 망할 수도 있겠다 싶은 다소 불안한 임시(?) 부자들인 경우가 많다.


리처드 D.루이스의 책 <미래는 핀란드에 있다>에서 소개한 핀란드인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들 역시 흥미롭다. 핀란드에는 '시수(Sisu)'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열악한 자연 환경과 러시아의 압박 속에 살아오며 형성된 핀란드인의 끈기와 강인한 기질을 말한다.

'루오테타부스(Luotettavuus)'는 신뢰성과 언행일치를 말한다.

- 정직한 사람은 과묵하다. 행동으로 보여줄 수 있는 말만 하려면 말수가 줄어들 수밖에.





덧글

  • 키작은 섹시녀 2016/01/25 00:29 # 답글

    오랫만에 읽고 싶은 책이 생겼네요.
    마지막 문단에 완전 공감!
    원래부터 부를 가지고 있던 사람들은 그것이 너무 익숙하기 때문에, 또 어렸을때부터 그걸 티내봤자 다른 사람들이 그것들을 보고 얼마나 달라붙어서 이익을 챙길지 알기 때문에 숨기죠;ㅁ;
  • 착한마녀 2016/01/29 01:43 #

    네 ^^ 웬만한 처세술, 힐링 서적보다 더 도움이 되더라구요. 남 눈치 좀 덜보고 자신감을 가지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부자에 대한 섹시녀님 부연설명에도 공감만땅이에요, 저는 부자는 아니지만 부유함이 들통(?)나면 정말 골치아파지는 일이 많긴 하더라구요. 심지어 단지 있어보인다는 이유만으로 범죄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그래서 평안을 유지하려면 더 쓸 돈이 많기도 하고 ㅋㅋ 암튼 나름 애로사항이 다들 있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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