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긴 어게인(Begin Again, 2013)_그 무엇이든 끝이라고 생각될 때 다시 시작되기도 하는 그 무엇이든 끝이라고 생각될 때.... ── 영화

비긴 어게인 

 

2014. 9. 13 메가박스 센트럴

 

제목도 입에 착 달라붙은 ‘비긴 어게인’. 작명 센스 돋는다. 


얼마 전 <무한도전> 성우 더빙 편 때문에 더욱 많이 알려진 내용이다시피. 

싱어송라이터인 ‘그레타’(키이라 나이틀리)는 오랜 남자친구 ‘데이브’(애덤 리바인)가 메이저 음반회사와 계약을 하게 되면서 함께 뉴욕으로 오게 된다. 날개 돋힌 듯 잘나가기 시작한 데이브가 다른 누구도 아닌 음반 회사 매니저와 바람이 나서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는 그레타.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 이여자 마음이야 더 말할 것도 없을 것 같고.

그 동안 뮤지션 지망생들이 보내 온 수많은 샘플 CD들을 도로 위에 그냥 던져 버릴 정도로 까탈스러웠던…그래서 추진하는 일이 거의 없던 댄(마크 러팔로)은 스티브 잡스처럼 자기 회사에서 해고당한다. 

그는 나라 잃은 심정으로 곧 자살할 사람처럼 위태롭게 비틀거리다가 허름한 뮤직바에 들르게 된다.

이곳에서 친구에게 등 떠밀려 무대에 올라 얼떨결에 자작곡을 부르게 된 그레타와 교점을 이루게 됨.

초라한 모습의 그레타와 더 초라한 듯한 기타 선율의 자작곡 'A Step You Can't Take Back'에 바 안의 누구도 귀를 기울이지 않았지만 천재적인 댄은 '뇌내 자체 편곡'을 통해 될 성부른 곡으로 확신하게 되었다.

난 이 장면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그래타의 궤적보다도 댄의 궤적에 더욱 마음이 흔들렸다. 배운 도둑질이 그거라고 벼랑 끝 상황에서도 그의 뇌와 귀는 본능적으로 제 주인을 살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댄은 그녀를 스타로 만들 자신감에 넘쳤지만 현실의 그는 키다리 아저씨 노릇을 할 수 있는 기반을 이미 잃은 상태. 

게다가 그의 동업자는 크레타의 곡을 알아서 편곡해서 들을만한 훌륭한 귀를 갖지 못했다.  

 댄은 앨범이 잘되면 돈을 벌어서 나눠 주기로 하고 일종의 재능 기부 펀드이자 밴드를 구성한다.

녹음 스튜디오는 길거리, 

세션은 매너리즘을 느끼고 있던 발레 교습소의 피아노 반주자와 빌어먹을 비발디곡 연주에 지쳐버린 클래식 수재들, 

코러스는 소음을 멈추는 대가로 돈을 요구하던 길에서 놀던 아이들.

이렇게 거리 밴드를 결성한 그들은 뉴욕의 지하철역, 빌딩 옥상 등을 전전하며 걸작을 만들어간다.

 

그들은 옛 동업자를 다시 찾아가 OK사인을 얻어내지만 메이저 음반 유통 구조의 벽에 부딪힌다. 기획사가 많은 마진을 남겨야 하므로 밴드단원들에게 수익이 별로 없고, 알려지지 않은 신인의 음반을 비싼 가격에 책정하는 것 자체가 아티스트에게는 불안한 일이었다.

기획사 측은 막강한 홍보 화력 지원으로 삽시간에 유명세를 탈 수 있을 것이라 자신감을 보인다. 하긴 자본이 들려주는 음악을 피하기란 쉽지 않다. 들으라고 여기저기 들려주는데 듣다 보면 호감도 느끼고 하는 거라는 그들의 계산도 일리가 있지만.

그레타는 어딘지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어야 하는 듯 불편해지고.

이미 남자친구인 데이브가 대형 음반 기획사와 계약을 하고 잘나가는 모습을 보았기에 자신 역시 비슷한 성공을 거둘 수 있을 거라고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겠지만 그녀는 저작자로서 다른 창의적인 방법을 찾는다. 그리 창의적인 건 아닌가? 고메한 뮤지션으로서는 파격적인 ‘박리다매’ 결정이.


이렇게 날개 돋힌 듯 팔려나간 음원 수익 덕분에 댄도 재기에 성공하고 그레타도 이름을 알리게 된다는 당연한 결말이다.

 

시작하려 애써볼 때는 시작하지 못하고

끝이라고 생각될 때 다시 시작되기도 하는 사람 사이의 관계 

그레타와 데이브는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커리어 측면에서는 그레타라는 여주인공이 결국 음악으로 인정받고 보기 좋게 성공할 거라는 걸 충분히 예상할 수 있어서 초장부터 안심이 되었지만, 선을 넘을 듯 넘지 않는 댄과 그레타의 묘한 관계가 시종일관 긴장감을 불러 일으켰다.

댄은 아내의 외도로 가정이 깨진 이혼남이고 그레타 역시 비슷한 미혼녀이기에 이 둘이 연결되어도 아무 문제가 없지만서도 뭐랄까 결국은 아무 사이 아닌, 순수한 동료로 남은 모습이 더 좋게 느껴졌다.


이어붙일 수 없는 컵처럼 조각나 버린 거라 생각했던 댄과 그 아내와의 관계, 

하지만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음악으로 인해 다시 시작되는 것 같은 옛 부부의 사이는 어쩌면 그레타와 데이브의 미래 모습 같기도 하다.

그레타에게 데이브는 아직은 이어붙일 수 없을 것만 같은 아픈 조각이고, 가정적이고 일편단심이었던 일중독자 댄에게서 느꼈던 커다란 존재감이 데이브를 더욱 평가절하하게 하는 요소가 되기도 할거다. 

그래도 언젠가는, 데이브가 언제나 그 자리에 머물러 준다면...댄이 상처를 치유하고 자신에게 실망을 준 아내와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상태가 되었듯이 그녀도 치유 후 음악적인 동반자이자 옛 연인인 찌질이(?) 데이브에게 돌아갈 수도 있지 않을까…. 

 

 

쓰는 곡이 모조리 듣기 좋은 천재 싱어송라이터로 변신한 키이라 나이틀리, 

연기자로 변신한 건 처음 보는 마룬 파이브의 보컬 애덤 리바인,

기똥 찬 안목을 가진 제작자로 변신한 헐크 아저씨(?)를 볼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만족스러웠다. 

OST에 버릴 곡이 하나도 없었기에 더욱 좋음. 오랜만에 음반 구매욕을 불러일으키는 영화였다.

 

셋의 변신 모두가 나름 성공적이었다고 생각한다. 

마룬파이브 보컬이 이렇게 멋있었던가 새삼스러웠다. 인물이 스토리 안에 있으니 달리 보이게 되었달까. 물론 그 역할은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은, 말도 안되게 바람을 피우는 찌질이 모습이지만 아무튼 그것마저도 예전의 듣보잡 느낌(지극히 개인적인 관점)에 비해 호감도가 급상승했다. 그리고 자신의 어리석음을 금세 깨닫고 폐인이 되어(?) 다시 돌아왔기에 그리 밉지만은 않은.

 

키이라 나이틀리는 뮤지션인 남편의 어깨너머로 본 게 있어서 그런가 노래는 살짝 순수하고 어눌하고 약간은 닭살이 돋아도 정말로 다이아몬드 원석 같은 뮤지션의 포스가 물씬 풍김.

마크 러팔로 아저씨는 더 말할 것도 없이 최고로 멋지다.

 

한 때 카톡 프로필 사진계를 휩쓸고 간 ‘원스’, ‘어거스트 러쉬’ 등 음악영화 열풍에 꼼짝도 하지 않던 나였는데 어쩌다가 이 영화는 봐버렸다. 

영화에서의 음악은 스토리와 영상발을 받아서 좋게 들리게 마련이라는 나의 편견은 보기 좋게 사라졌다.

1년이 넘게 지난 지금까지도 가끔 거리에서 듣게 되는 날이 있고, 그런 날이면 OST를 무한 반복하게 되는 걸 보면 ‘비긴 어게인’ ost의 음악들은 확실히 좋은 것 같다. 같은 감독의 ‘원스’라는 영화의 음악은 어떨지도 뒷북으로 궁금해 질 정도. 하지만 무지하게 게으른 나는 언제까지고 그냥 ‘비긴 어게인’만을 관람 목록에 넣어두고 만족하고 있을테지. 



유뷰브에 'A Step You Can't Take Back'의 영화 속 장면이 있어서 퍼왔다. 가장 좋았던 장면 +_+




덧글

  • 봉봉이 2015/11/12 10:26 # 답글

    참 음악과 감성이 좋았던거 같아요.
    말씀대로 보기에 편했고 남녀주인공이 사랑이란 감정으로 억지로 이어지지 않아서 더 좋았던거 같아요.
    소문만큼이나 좋지던건 아니었지만
    만족스럽게 봤던거 같아요
  • 착한마녀 2015/11/16 23:54 #

    저도 너무 쇼킹하지 않고 무난하고 잔잔한 내용이 마음에 들었어요 ^^
    말씀드린대로 영화적으로 마음에 딱 드는 장면은 한 부분이었지만 음악 덕분에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아요.
  • cheb 2015/11/25 19:51 # 답글

    원스는 극장에서 우연히 포스터 엽서를 보고 괜찮겠다 싶어서 봤었는데. 몸서리치게 쓸쓸했던 2007년의 겨울이 늘 떠오릅니다. T_T 비긴 어게인도 재밌었지만 개인적으로 원스는 두고두고 다시 봐도 좋을 영화에요.
  • 착한마녀 2015/11/30 18:36 #

    ㅋㅋㅋ 원스는 저도 포스터가 어쩐지 안끌리더라구요. 몸서리치게 쓸쓸한 그 분위기가 싫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긴 여운이 남는 작품이라니 언제라도 컴다운이 필요할 때 꼭 봐봐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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