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추구와 발견/파트리크 쥐스킨트, 헬무트 디틀/열린책들_현대판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 ── 책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작품을 한 번도 읽은 적이 없다.
<향수>, <좀머씨 이야기> 같은 널리 알려진 히트작들이 많지만서도 어쩐지 손이 가지 않았다.
이 책은 순전히 제목에 낚여서 읽었다. 파트리크 쥐스킨트가 사랑에 대한 날카롭고도 근사한 정의를 내려주는 에세이인줄로 알았다.
이 책을 읽은 다음에는 <깊이에의 강요>를 읽어볼 참이었다.

파트리크 쥐스킨트가 아닌 헬무트 디틀이라는 영화감독의 에세이가 실려있고, 그 둘이 함께 쓴 영화의 시나리오가 합본되어 있는 책이다.

아마도 은둔형 작가라던 파트리크 쥐스킨트는 헬무트 디틀 감독에게 낚여(?) 시나리오 작업에 참여했으리라.
어찌됐건 나의 관심사였던 파트리크 쥐스킨트에 대한 정보는 거의 없었던 셈이고, 헬무트 디틀이라는 사람의 정보를 말할 것 같으면 꿈 속에서 영감을 얻은 것을 바탕으로 많은 영화를 만든 감독이다. 본인이 표현하길 불면증 등 수면장애에서 비롯된 알 수 없는 꿈들에 시달린 경험을 예술혼으로 승화하여 영화감독이라는 직업을 유지해나간 사람이다.

"이제 밤마다 나타나는 장면들과 목소리들은 형벌이 아니었다. 변덕스럽고 귀찮은 방해물은커녕 오히려 고마워해야 할 선물이 되었다. 어쨌든 나는 그걸로 생계를 유지해 온 셈이었으니 말이다. 사람이란 모든 걸 다 가질 수는 없는 법이다. 잠도 편히 자면서 돈도 벌려는 것은 지나친 욕심이다"


<사랑의 추구와 발견>이라는 영화는 2005년 독일에서 제작, 개봉된 작품이다.
영화로 보았으면 더 좋았을 것을. 책 뒤쪽에 스틸 사진들이 첨부되어 있었는데 꽤 재미있을 것 같다.

그리스 신화 속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 이야기에서 모티브를 얻은 로맨틱 판타지 스토리다.
제법 노골적인 제목인 <사랑의 추구와 발견>....책을 덮고 제목을 여러 번 곱씹게 만든다.
마구 교훈적이고 본받고 싶은 사랑의 유형은 아니었다.

'미미'라는 작곡가와 재능이 없다고 자책하던 성악가 지망생 '비비안'의 시작은 꽤 드라마틱하고 충동적이다. 처음 만난 날 한 침대를 쓰고 같이 살기 시작하고...그것을 '인연'이나 '운명적인'이라는 단어로 치환이 가능한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지만. '광끼'가 미덕이라는 예술가이니까.
아무튼 작곡가 미미는 혹독한 트레이닝의 과정을 거쳐 비비안을 당대 최고의 여가수로 만든다. 그런데 '그 남자 작곡, 그 여자 노래'의 작품들이 흥행을 거듭할수록 이 둘의 사랑은 삐걱거리기 시작한다.
미미는 비비안에게 "천진난만한 여자에서 냉정한 사업가로 변해버렸다"며 비난한다.
비비안은 "당신이 원하는대로 고치고 고쳐 원래의 나를 잃은 것"이라고 항변한다.

이별을 하고 
하루도 안가 서로의 빈자리를 그리워하며 재회를 꿈꾸지만
막상 마주치면 쿨한 척, 잘지내는 척 한다.
그러다가 미미는 스스로 목숨을 끊고, 뒤늦게 사랑을 확인한 비비안은 그를 찾으러 저승에 간다.
죽음까지 갈라놓지 못할 것 같은 위대한 사랑의 감정으로 둘은 재회에 성공하고, 이승으로 돌아오면 될 것 같았는데...
웃기고도 사소한 말다툼이 화근이 되어 그만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처럼 되고 말았다.

영화적으로 보면 여러가지 반전도 있고, 또 다른 에피소드들도 있고 참 재미있다.
'위대하고 낭만적이고 시적이고 마법에 걸린 것 같은 사랑'을 갈망했던 두 예술인이었기에 아무튼 소원 성취는 한 셈이다.
일반인인 나같은 사람이 추구하는 것과는 좀 다른 것 같지만 말이다.

그 둘은 젊고 아름다웠던 시절 이후에는 함께 할 수 없었다. 비비안은 저승에서 돌아오지 못한 미미가 생전에 살던 아파트에서 할머니가 될 때까지 홀로 살고 있다.
미미가 아니면 아무도 채워줄 수 없는 사랑의 빈자리를 간직한 채 말이다.
시작은 충동적이었지만 아무튼 무겁고도 무겁게 절개를 지키게 된 사랑.

나는 삽시간에 타올라 결국 어느 한쪽이 타서 재가 되어버리고, 남은 한쪽은 온기의 기억만을 더듬고 사는 그런 불같은 사랑(?)은 별로다. 천재지변과 같은 어쩔 수 없는 환경 탓에 그렇게 되는 것은 몰라도 스스로 불행을 자초하는 것은 미성숙하고 결핍된 사람들이 하는 행위이다. 
처음 시작은 지극히 냉정하고 다소간의 의심이 있을지라도, 조심스럽게 친해지고 시간이 흐를수록 조금씩 굳건해지고 마지막에 평화를 함께 누릴 수 있는 그런 사랑이 최고가 아닐까.


-----------발췌------------
그래요 처음엔 저 역시 이제 우리 두사람은 완전히 끝났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갑자기.....다른 말로 하면 번개를 맞은 듯이 한순간 깨닫게 됐어요......, 우린 서로에게 속한다는 것을......그리고 이제 전 알아요. 우리는 함께 있을 거예요. 우리 삶이 끝날 때까지요!
- 꼭 헤어져봐야 깨닫게 된다. 있을 때 잘해야 하는데 말이다.

우리의 사랑은 그때 이미 더 이상 위대해질 수 없을 만큼 위대했으니까요. 더 이상은 초라해지는 것밖에 남아 있지 않았을 테니까요.
- 차라리 함께할 수 없었던 것이 다행일지도 모른다는 비비안의 말. 뭥미? 사랑의 화려함과 비통한 슬픔은 견딜 수 있었지만 그 뒤에 따라올지도 모를 초라함과 권태로움은 견디기 힘들었을거라는 소리인가. 그것이 진정한 사랑일까. 상대가 줄 수 있는 실망감까지도 어느 정도는 표용할 줄 아는 것이 더 큰 사랑이 아닐런지 나는 의문을 품게 된다.

만약 두 사람이 아직 죽지 않았다면 아마 지금도 그들은 살아 있을 것이다. 
- 말장난같은데 멋져서 발췌

머리를 잃어버린 사람은 마음을 얻게 된대요.
- 역시 멋진 문장이기에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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