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김기현 저/민음사_'참자아의 완성과 타자의 성취' 멋지고도 멋진 진정한 선비의 철학 ── 책

선비/김기현 저/민음사


참자아의 완성과 타자의 성취!

이 책을 읽고 나면 이 어구가 머릿속에 콱 박힌다. 세상에서 가장 멋진 말로 들림.
그러니까 진정한 선비란 끊임없이 진리를 탐구하는 속에서 우선 자기 자신을 완성시키고, 거기에 그치지 않고 다른 사람의 성취에도 마땅히 기여를 해야 한다는 것.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살지~"라고 생각하던 귀얇은 대중들 틈에 섞여 있었다. 그런데 역시나 동양의 철학이 절대 무시할 만한게 못된다는 걸 깊이 깨달았다.
'선비'라는 단어를 평소 좋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고루하고 지루하고 시대에 뒤떨어진 권위주의적인 사람의 이미지랄까.
개그 프로그램에서도 희화화되는 대상, 책상 앞에 앉아 책만 보던 현실부적응자 이미지가 강하지 않나.
그런데 이런 오해들이 깡그리 풀렸다.

그릇이 크다는 말은 바로 선비를 두고 하는 말이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선비는 갓 쓰고 폼잡는 허울뿐인 선비가 아니라 몸과 마음 모두 어느 정도의 경지에 이른 진정한 선비를 지칭한다.

당장은 손해이지만 궁극의 이익을 추구할 수 있는 넓은 시야.
나 아니면 남인 지금의 세태에 나와 남을 하나로,
인간과 자연을 분리하는 지금 세태에 인간과 자연을 하나로,
인간을 지연의 일부로 겸손하게 바라보는 것이 선비의 가치관이다.

동양철학은 만물의 해답을 얻을 수 있는 대단히 매력적인 학문인 것 같다.
서양철학은 뭐랄까 국지적인 해답은 있지만 그 답을 다른 문제에 적용할 때는 아귀가 잘 들어맞지 않는 면이 있는데 동양철학은 만물을 아우르는 신비함이 있다. 폭넓게 멀리 본다는 측면에서 서양의 그것에 비해 우월한 것 같다.

<주역>만 해도 그렇다.
주역은 알려졌다시피 자연의 유기성에 대한 신비로움을 집대성한 걸작이지만 전체적인 주제는 결코 운명론에 메여 있지 않다.
서양은 외부의 시련에 신의 존재에 의지하지만 동양철학은 그 와중에도 자기 자신 안에서 해결법을 찾고자 하는 점이 다르다.

조상 숭배도 그렇다.
내가 온 곳, 즉 조상을 섬기면서 내가 이어질 후손들 사이의 관계를 자연히 생각하게 되고 자신의 의미를 찾을 수 있게 되는 이치. 따라서 선대와 후대를 잇는 자신이 더욱 소중한 존재로 각인된다. 저자는 이것을 참다운 '개인주의'로 설명하고 있다.
반면 이와 구분되는 개념인 '개인 이기주의'는 유기적인 관계를 의식하지 못한 채로 오로지 자신만을 위하려 하지만 결국은 길을 잃고 방황하게 된다. 나약함을 견디지 못할 정도로 잘못될 경우 운명이나 신을 필요로하게 된다.

저자인 김기현 교수는 퇴계 이황을 선비의 모범으로 삼고 있다. 그 분이 괜히 만원짜리에 등장하는 게 아니었다.
그 분에 대한 일화를 하나하나 알아갈 수록 언행일치의 선비다운 대단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양의 소크라테스에 뒤지지 않을 인물이다.

선비가 요즘 세상에 살고 있다면
오히려 허세와는 거리가 멀 것 같다
목돈들여 해외에 나가고 굳이 명품을 걸치지 않아도 남과 자신을 비교하며 위화감을 느끼지 않을 수 있는 근거 있는 자신감으로 무장한.
그저 동내 어귀에 냇물이 흐르고 물고기가 뛰는 순간에도 자연의 위대함과 만물의 섭리, 인간의 도리를 깨닫고 안분지족하는 소박한 사람일 것이다.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일상속에서 창조적 감성을 발휘할 수 있는 공감능력과 감성지수가 높은 그런 능력자.
우리 시대가 원하는 인재상 아닌가.


실용주의가 최고라고
여겼던 나를
반성하게 된다.
그런데 가장 괜찮은 실용주의는
바로 '선비의 철학'이었다
아름다운 풍경따위 돌아다 볼 시간 없다고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자연이라고 폄하하고 너무 멀리해 왔던 내가 무지 모자랐었단 걸 깨달음.
자연 속에서 날카로움도 잊고 평화로워질 수 있는데, 나는 그런 여유를 부리는 사람을 한심하게 생각하는 경향도 없지않아 있었다.
예를 들면 부모님이 내가 가져다 드린 월급으로 값비싼 화분을 사들이고 시시때때로 분갈이를 하느라 또 돈이 들고 하는 것에 짜증을 내던 것도 다반사다.
하지만 공간을 그렇게 자연친화적으로 꾸미는 것이 마음의 자양분을 주어 삶을 더욱 윤택하게 만드는 작은 투자라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다. 인생을 먼저 산 어른들에게서 역시 배울 점이 많은 것 같다. 삶을 소중하게 여기는 법, 그 속에서 나 자신이 잘 될 수 있는 동력을 얻을 수 있다는 걸 어려운 동양철학서 따위 보지 않은 어르신들이 이미 몸소 실천하고 계셨던 거다.

선비, 그리고 공자왈 맹자왈 하는 동양철학이라는 것은 결코 책 속에만 머무르는 개념이 아니다.
이 책은 꾀 두껍고 얼핏 뭔말인지 잘 와닿지 않아서 여러 번 곱씹어야 하는 불편한 글귀로 가득한 편이다.
그래도 꾹 참고 한 구절 한 구절을 곱씹으면서 읽을 수록 어쩐지 단순하고도 위대한 진리가 어렴풋이나마 아로새겨지는 것 같았다.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많은 현상들에 대한 고민을 옛 선비들도 했고, 충분한 사색 끝에 가장 효율적인 답을 구해 후손들을 위해 남겨놓은 것이 동양철학의 주옥같은 명저들이 아닐까 싶었다. 그걸 외면하고 살아온 것에 대해서도 반성하게 된다.


예를 들면 요즘 문제가 되고 있는 무상급식, 혹은 남녀평등...이런 것들에 대해서도 채찍이 될만한 의미 있는 구절들을 찾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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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자체로만 보면 참으로 고상하지만 허구성이 있는 평등이념을 평등주의의 허구성을 다음과 같이 비유적으로 논증한다.

'만물이 제각기 다른 것이야말로 그것들의 실상이다. 그 차이가 어떤 것은 두 배 또는 다섯 배가 되기도 하고 또 어떤 것은 열 배 백배, 혹은 천 배 만 배나 되는 것도 있다. 그런데도 그대가 그것들을 모두 동일시해 버린다면 이는 온 세상을 혼란에 빠뜨리는 짓이다. 만약 좋은 신발과 나쁜 실발의 값이 같다면 누가 좋은 신발을 만들려 하겠는가 - <맹자> 등문공 상'

사실 사람들의 능력과 일의 성과가 저마다 다른 터에 좋은 신발을 만드는 사람과 나쁜 신발을 만드는 사람을 동등하게 대우한다면 좋고 나쁨의 가치에 혼란이 야기될 것이며 그것은 전자의 입장에서는 또 다른 불평등에 다름 아닐 것이다.

....외교에서도 그렇다....

대소국간의 불평등 질서를 오히려 당연한 사실로 받아들였다. 현실적으로 엄연히 존재하는 대소와 강약의 차이를 외면하고 부정하는 평등의식은 잘못된 것이며 그 결과 갈등과 대결, 전쟁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불평등 세계관이 강대국에게 약소국을 지배할 권한을 인정하는 것은 아니었다. 사대 의식은 약소국이 강대국을 섬겨야 하지만 강대국 또한 약소국에 대해 존중과 예의의 태도를 갖추어야 한다는 언외의 뜻을 함축하고 있다...<춘추좌씨전>은 이러한 '섬김'의 도리를 다음과 같이 부연한다.

'소국은 대국을 신의로 섬겨야 하고, 대국은 소국을 사랑으로 보호해야 한다. 소국이 대국을 배반하는 것은 신의 없는 짓이요, 대국이 소국을 침탈하는 것은 불인한 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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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성이 감성 우위에 있다고 생각하며 과학적인 것이 만능이라고 아주 대놓고 말하기도 하는 그런 인간이다.
뭐랄까 문학적 감성에 매몰된 듯 현실감을 잃고 신비주의를 쫓고 그런 사람들을 참 염증 내 했다. 세상에 여러 사람이 필요해서 존재하는 건데 그 섭리를 잊었고 나와 성향이 맞지 않으면 선을 긋고 피하기 바빴다. 적당한 수준에서 그런 사람들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잘 어우러져 살아가야겠다고 반성했다. 하지만 그 적당한 수준이라는 사람들을 찾기는 옛날 옛적 수많은 선비들 중에서도 퇴계 이황같은 사람을 찾는 것 만큼이나 힘들긴 하다 ㅋㅋ

속세를 떠날까 충동적인 생각이 들 정도일 때도 있었지만 힘을 내야 한다. 정면돌파하고 부대끼는 것은 솔직히 못하지만 나름대로 나를 방어하면서 서로 영향을 주고 받을 수 있는 위치에는 머물러야 한다. 그것이 사회부적응자가 되지 않는 방법이다.
그리고 선비라는 사람들은 사회를 외면한 채 홀로 대쪽같이 고고했던 이기적인 지식인들이 아니었다. 때로는 자기 자신의 목숨을 걸고서 도덕을 저버리지 않았다. 그들의 목숨값조차도 당시 사회를 변화시키기에는 역부족이었겠지만 먼 미래를 살고 있는 후손들에게 귀감을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영향력이 큰 일인 것 같다.

"따뜻한 사랑으로 세상에 나서려 했던 선비는 악을 충분히 제거할 수 있는 후천적인 현상으로 여기면서, 아무리 타락한 세상에서도 도덕사회의 꿈을 버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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