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덤 오브 헤븐(2005)_종교를 대하는 다양한 인간 군상을 계층별로 잘 정리한 리들리 스콧 감독님의 걸작 ── 영화

2005/5/24/CGV 목동

리들리 스콧이라는 거장 감독의 영화.
올랜도블룸, 니암니슨, 에바 그린, 제레미 아이언스, 에드워드 노튼 등 화려한 캐스팅.
미국, 스페인, 영국이 합작하여 만든 거대한 스케일.

위의 수식어에 걸맞게 이름값을 톡톡히 한 영화로 기억된다.
역사적 고증과는 별개로 내용이 꾀 교육적이다.
영화가 끝나고 난 후 '종교와 인간 심리'라는 가상의 교양과목을 한 학기 수강한 것만 같은 임팩트가 있었다.
나중에 자식들에게 이 영화를 던져 주고 '너의 종교적 가치관을 정립해 보거라'라고 과제를 내주고 싶을 정도. 

세계사에 잼병인 나에게는 그저 교훈도 있고 재미도 있는 좋은 영화였는데 이름은 들어본 유명한 '십자군 전쟁'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사건 자체가 이데올로기적이라 그런지 주옥같은 명대사가 많았다. 귀에 쏙쏙 들어오면서도 인간의 존재와 종교 등에 관한 철학이 담긴 명언같은 대사들.

이 영화에 등장한 무게감있는 많은 배우들 중에서 소름이 끼쳤던 건 에드워드 노튼이다. 그는 나병에 걸린 예루살렘의 국왕 볼드윈 4세로 등장하며 내내 철가면을 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카리스마와 감정이 그대로 전해지는 듯.
표정이 빠진 채, 철가면에 뚫린 부분으로 보이는 눈빛과 몸가짐으로만 보여지는 연기임에도 어쩜 그리 왕족의 품위가 느껴지는지.
일부러 전단도 외면하고 아무 정보도 없이 들어갔던 터라 나중에 꼭 저 배우가 누군지 찾아보아야겠다고 생각했었는데 무려 '에드워드 노튼'이어서 깜짝 놀랐다.
연기자에게 있어 역할에 귀천이 없다지만은 아무리 그래도 얼굴을 가린 채 얼마 안되는 장면을 위해 출연할 군번이라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기에. 

아무튼 영화 내용으로 돌아와서,
은유적인 듯 하면서도 메시지가 명확한 것이 역시 리들리 스콧 감독이 실력자이기 때문인가 싶었다.
전쟁의 원인은 내가 봐도 상당히 허구적이다. 사랑 때문에 종교를 들고 일어난 전쟁.

자랑은 아니다만 세계사에 대해 전혀 모르는 나이기에 '십자군 원정'에 대해서는 별 할말이 없다.
기독교와 이슬람교가 종교 성지인 '예루살렘'을 서로 차지하기 위한 전쟁이 맞나? 아무튼 영화에서는 그렇게 나옴. 예루살렘에 승리의 깃발을 꽂기 위해 엎치락 뒤치락 싸움. 전 지역의 이름있는 전사들이 모여들어 싸움.

이 영화에 종교를 대하는 모든 부류의 교인들의 군상이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잘 정리되어 있었다.

일단 양 팀의 군대를 이끄는 최고 통솔자,
예루살렘을 '알라의 성지로 만들고 싶어하는 이슬람교 팀'에서 싸우는 최고의 우두머리 살라딘과 '예수의 성지로 만들고 싶어하는 기독교 팀'의 최고인 국왕 볼드윈 4세는 서로 한 치도 물러설 수 없는 대립 관계이긴 해도 꾀 신사적인 고메한 인격자로 그려진다.
살라딘은 쓰러진 십자가를 세워주기도 한다. 상대의 종교를 인정하는 행동이다.
이들은 서로 먼 거리를 두고 있는 각자의 진영에서 서로의 언어로 종교적 인사를 건네기도 한다.
이건 마치 법정스님과 이해인 수녀님이 서로 편지를 주고받으며 친근하게 교류를 했던 것과 비슷하달까. 

전쟁에 지쳐 대체 '예루살렘이 뭥미'라고 묻는 기사 발리안(올란드블룸)에게 살라딘은 말한다.
"Nothing. Or everything"
아무것도 아닌 것, 또는 모든 것이기도 하고.
종교는 아무것도 아니기도 하고, 또는 모든 것이기도 하고.

아무튼 대립한다. 아무것도 아닌 걸로 대립하는 것이기도 하고, 어찌 보면 아주 중요한 무언가를 위한 줄다리기일 수도 있고.


계급의 피라미드 아래로 조금 더 내려와 보면 몸으로 피터지게 싸우는 전사들이 있다.
이들은 지도자의 명을 따르지만 종교나 신념에 대해 제각각 생각이 다르다.
전사들은 '적앞에서 두려워하지 말라, 선을 행하라, 약자를 보호하라, 목숨을 걸고 진실만을 말하며....' 등의 기사도 정신에 입각해 전쟁에 임했을지 모르지만.
혹은 '왕을 지켜라, 왕이 죽으면 백성을 지켜라'라는 아버지의 가르침에 입각한 것일수도...

그 중에는 "자살을 해서 죽은 아내도 지옥이 아닌 마음에 있고, 신도 성지가 아닌 머리와 가슴에 있다"고 종교지도자보다도 더욱 현명한 종교관을 지닌 똑똑한 발리안 같은 전사도 있다.

하지만 엑스트라들은 말한다 그저 직업이 전사이기에, 지금 시대에 싸워야 하는 임무를 띠고 있기에 싸울 뿐이라고들.
영화 속에서도 병사들은 반전주의자와 호전주의자들로 나뉜다. 선 세대들은 전쟁을 하면서도 명분이 없음을 인정한다. 후 세대들은 전쟁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건 뭐 전쟁에 참여하는 것 말고는 딱히 의미있는 할일이 없을 것 같아서일수도 있고, 전리품을 얻기 위한 이유일 수도 있다.
알라의 성지 vs 예수의 성지, 둘 중 어떤 것이 더 낫다고 할 수 없지만 어쨌든 자기 편을 위해 예루살렘을 차지하는 데 기꺼이 목숨까지 바쳐야만 했다.

어떤 병사들은 지독한 운명론적 모순에 빠져 있다.
매사가 "신의 뜻, 신의 뜻"
죽고 사는 것도, 어딘가에 무사히 도착하는 것도, 사소한 결투를 별여 이기고 지는 것도.
원수를 갚거나 남의 재산을 빼앗기 위한 싸움에도 신이 이미 전쟁의 승자를 결정해 두었다고 생각하면서, 이기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하고 게을러지고 하는 것도 다 운명이라면서.
내가 이 전쟁에서 죽을지 살아남을지 알기 위해 자신의 운을 시험해보려는 듯이 인생의 주체성을 잃었다.

국왕 볼드윈4세는 일침을 뱉는다. 물론 그의 백성 누구도 그 말을 널리 전해들을 수는 없었겠지만.
"몸은 권력의 지배를 받더라도 영혼의 주인은 자신이다. 신 앞에선 핑계가 없다. 누가 시켜서 그랬다는 둥..."

결국 전쟁은 신이 원한 전쟁이라기보다는 인간이 원한, 인간의 탐욕을 채우기 위한 이런저런 필요에 의해 벌어진 것임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셈.
알라와 예수가 각자 "예루살렘을 내껄로 만들어줘"라고 시키기라도 했나. 
인간이 말 안듣고 전쟁을 하지 않더라도 그걸 용서하지 않는 신이라면 신이 될 자격이 없으므로 상관없지 않은가.

역사는 편리하게 기록된다. 마치 시험 보기 편하게 요점만을 정리하려는 듯.
전쟁을 지속시키기 위해 누군가가 '종교화합!'을 외치면 '신성모독!'이라고 매도하며 목표를 다잡아 가며 끌고 끌었던 전쟁이 십자군 전쟁이었을지도.

어쩌면 가장 밑바닥의 일반 백성들은...
성지가 태워지던 말던 딱히 관심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원래 밑바닥 백성들이란 지조가 없는 존재인것인지 종교 따위 상황에 따라서 '개종하고 회개하면 그만이지'라며 편리한 신앙관을 피력하기도 한다.

십자군 전쟁의 기획자들은 그런 백성들을 위한다며 신을 핑계로 전쟁을 일으켰던 것.
백성보다는 영토와 재물 등 자신들의 탐욕을 위해, 혹은 백성들을 전사로 취업시켜 실업률을 낮추기 위해...뭐 이런 이유들이 더 납득하기 쉽다.


리들리 스콧 감독이 말하려고 했던 바람직한 종교관이란 무엇일까.
- 서로의 종교를 존중해 줄 것
- 모든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 것
- 아무 것도 아닌 것이라고도 생각하지 말 것

이 정도가 아닐런지.
나 역시 '아무 종교나 믿으면 어때'라는 생각을 한다. 믿는 사람의 상태가 관건이라고 생각하기에.
하지만 또 이 종교 저 종교 개종해가면서 왔다리갔다리 하는 사람은 또 싫고.
종교도 적당한 게 좋다. 너무 빠지는 것도 문제고, 또 너무 무시하고 업신여겨도 인간으로서 자만하게 될 것 같아 별로다.


발리안과 어여쁜 공주님....이 아님! 나병 걸린 국왕 볼드윈4세. 어여쁜 가면 뒤에 에드워드노튼이 들어있다.




덧글

  • 터미베어 2014/09/06 09:54 # 답글

    이 영화는 다 좋은데, 실제 역사에서는 나름 간지남이셧던 예루살렘 대주교가 너무 찌질이로 나와서 안습
  • 착한마녀 2014/09/09 01:09 #

    그런가요 ^^? 저는 실제 역사는 잘 몰라서요.
    반면에 영화 속 살라딘은 굉장히(외모와는 별개로) 간지남으로 나왔던 거 같아요.
    대부분의 명대사는 살라딘 몫이었던 듯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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