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산일기(2011)_자유경쟁사회에서 자유찾기를 버거워하는 탈북자들을 통해 우리 자신을 무겁게 되돌아보게 하는 영화 ── 영화

2011/3/25/CGV 압구정

'무산'은 중의적 표현이다.
북한에 실제 '무산'이라는 지명이 존재한다고.
그리고 재산이 없는 상태. 남한에 와서도 무엇인가를 소유하기가 참 힘든, 그래서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는 탈북자들을 의미한다고.

이 영화는 탈북자들의 어두운 실상에 주목해 묘사를 한다고 했지만, 원래 이 땅에 살고 있던 그저 그런 가난한 사람들의 습성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다.
4천만원 상당의 정착비를 받지만 그런 돈을 자유롭게 써본 적이 없어 흥청망청 탕진하기 일쑤인 탈북자들.
스스로 노력하는 것에, 자기 것을 일구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삶.
그래서 하필 자기와 같은 만만한 탈북자들을 상대로 사기​를 치다가 자유에 대한 희망을 잃어가는 삶.
자유고 뭐고 하루하루 먹고 살 것을 배급해 줄 북한이 그리워 돌아갈 지경의 삶이다.
누군가 배급해 주지 않으면 스스로 일굴 수 없어 차라리 북한 시스템을 동경하는 것 같은 자생적 친북종북주의자들도 있다시피 말이다.
감독은 이러한 현실 속 이야기들을 매우 짜임새 있게 담았다.


박정범 감독이 직접 주연 배우로 연기를 했다. 전혀 탈북자 답지는 않은 복스러운 외모(?)이지만 연기는 아주 자연스럽다.
실제로 박정범 감독은 탈북하여 남한에서 지내다가 고인이 된 전승철님과 절친이었다고 한다. 그렇게 곁에서 보고 느낀 바를 영화로 만들었단다. 전승철님은 암으로 투병하다가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고 함.

북한에서 굶어 죽으나, 남한으로 탈출을 하다가 잡혀 죽으나 이판사판이라며 목숨을 걸고 탈북한 사람들.
그런 탈북자들에게 남한이라는 자본주의 사회도 녹록치만은 않다.
작게나마 주어진 일, 주어진 배급으로 살던 방식에서 무엇이든 스스로 찾아서 일을 해야 하고 재산도 스스로 만들어야 하는 남한의 자유가 도리어 부담이 되는 탈북자들.
그래서 도리어 이민자들에 대한 사회 복지가 잘되어 있다는 스위스 등의 중립국으로 가는 것을 목표로 삼기도 한다. 극단적인 경우는 다시 북한행을 희망한다고 하기도 함.
어쩌면 그들에게 남북한 통일이나 자유주의니 공산주의니 하는 이념은 전혀 중요하지 않을 것 같다. 그저 남한의 보통 서민들과 마찬가지로 목구멍이 포도청인 거겠지.  

남한을 믿고 목숨 걸고 온 탈북자들을 제대로 품어주지 못하는 우리 사회.
하지만 무조건 그들의 편을 들 수도 없긴 하다. 경쟁력이 없다면 도태되는 것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기 때문이다.
탈북을 했더니 자유가 도리어 부담스러울 정도로 무능한 사람만큼이나, 나는 물론 우리네 주변인들도 힘들게 살고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영화속에서 표면적으로는 감시자이지만 보호자이자 친구인 박형사같은 멘토들이 우리 사회 곳곳에 많지 않은가. 자본주의 사회가 냉혹하다고는 하지만 따뜻한 사람도 분명 많고, 인간적인 구석도 있는 건 사실이지 않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무능한 주제에 열심히 살아보려 노력하지 않았다는 손가락질을 뱃속 편하게 할 수만은 없는 현실의 벽도 분명 있다.
탈북자들이 북에서 지니고 있던 지위와 그에 따른 정보의 수준, 살아가는 방식은 남한사회에 와서도 그 가치를 그대로 이어간다.
그래서 북에서 먹고살던 별다른 기술도 없고 내세울 것이라고는 몸밖에 없는 이들은 열심히 일을 하려 해도 막노동이나 전단 붙이기 아르바이트조차 쉽지 않다.
탈북자에게 가해지는 정확한 이유도 없는 따가운 시선들.

특히나 주인공 승철이 했던 '벽보 붙이기 업계'의 매커니즘도 입이 딱 벌어질 지경.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돈벌이가 되는 곳에는 조직적인 텃새가 있게 마련인 우리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하나 더 발견한 것 같아 갑갑했다.
자본주의 사회일수록 균등한 기회에 대한 사회 정의를 확립하는 것이 중요한데 이른 바 독과점 현상이 '벽보 붙이기'에서조차 벌어지고 있는 현실에 울화통이 치미는 것 같았다.

그래도 합법적인 방법으로 성실하게 살아보려 노력하는 승철.
그 옆에 북에 있는 가족들을 탈출시키고자 푼돈을 모으는 같은 처지의 탈북자들의 등을 쳐먹는 친구 경철이 있다. 바보처럼 열심히 사는 승철이 답답하다고 늘 입버릇처럼 말하는 경철. 승철이 자기처럼 약은 것 같았으면 절친으로 의지하고 붙어있지 않았을 거면서.
아니나다를까 승철이 선량하게 열심히 살고자했던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변하기로 마음먹은 순간 가장 먼저 피해를 보는 이는 다름아닌 경철이 된다.

시네마토크 시간에 알게 된 놀라운 사실 하나 더.
박정범 감독이 체육학과 출신이라는 점.
그걸 전혀 감안하지 않더라도 영화가 참 극적이었다. 스토리 흐름도 그렇고 화면 구도도 그렇고.
내용이 무겁지만 너무 은유적이라서 어려운 것도 아니었고. 신인감독이라고 하지 않고 그 어떤 거장 감독의 작품이라고 해도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자연스러우면서도 무게감있는 연출이었다.

특히 마지막 장면에서, 친구보다 더 소중히 여기던 개가 교통사고로 죽었는데 어쩌면 무덤덤한 듯 멍하니 쳐다보는 승철의 모습은 아직도 기억난다. 이미 너무 힘이 들어서 어떠한 기쁨에도 슬픔에도 그저 그런듯한 반응, 아무 감각이 없는 사람처럼 표현할 줄 모르게 되어버린 것 같아서.

하지만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지금 새터민에 대한 시선이나 그들의 입지는 많이 변한 것이 사실인지라, 이 영화를 지금쯤 처음 접했더라면 그 때처럼 전적으로 공감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지금이야 역차별 논란이 일 수도 있을만큼 새터민들이 좀 기를 펴고 사는 것 같다. 물론 아직까지도 그들에 대한 지원은 많이 부족하고, 그들에 대한 배려 정책에 별다른 불만이 있는 것도 아니다. 외국인 노동자나 국제 매매혼(?!)을 해서 들어온 며느리들보다야 더 챙겨주어야 할 계층이 새터민들이라는 것에는 남한의 토박이로서도 이의가 없으니까.

아무쪼록 조금만 더 버텼더라면 그래도 조금 더 살 만한 시간이 왔을텐데. 과도기를 살다가 차마 버티지 못하고 가신 고 전승철 님의 명복을 빈다.
이 영화 덕분에 전승철 님 같은 분들이 아주 중요한 시기에 자유를 찾아 넘어와 이 땅에서 살아냈다는 걸 알게 되어서 참 다행이다. (영화 속에서 그의 죽음은 묘사되지 않는다. 영화 속 승철의 삶은 현재진행형일 거라고 믿는다)
실제 인물인 전승철 님은 말기에 암을 발견하여 ​안타깝게 돌아가셨지만 그나마 박정범 감독님과 함께 영화인으로서의 꿈을 키워가던 좋은 시절도 있었다는 걸로 위안삼고 싶다.
전승철 님 같은 사람들이 지금의 탈북자들이 좀 더 마음 편하게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준 것일거다.

시네마토크가 진행된 걸 봤는데, 맨 앞줄에 앉았더니 이렇게 가까이 이동진님을 촬영할 수 있었다. 박정범 감독님과 함께 진행했던 무비꼴라쥬 시네마토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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